을유문화사편 삼국유사 권 3 흥법 3

한자 연습

영문이 2019. 8. 25. 23:49

原宗興法(距訥祗世一百餘年)厭髑滅身.

원종흥법(거눌지세일백여년)염촉멸신.

원종흥법(눌지세상 100년을 잠들게 하다)염이란 해골도 멸망하게 하는 몸

 

新羅本記.法興大王卽位十四年.小臣異次頓爲法滅身.卽蕭梁晋通八年丁未.西竺達摩來金陵之歲也.是年朗智法師.亦始住靈鷲山開法,

신라본기.법흥대왕즉위십사년.소신이차돈위법멸신.즉소양진통팔년정미.서축달마래금능지세야.시년낭지법사.역시주영취산개법,

신라본기에 있다. 법흥대왕 즉위에서 14년에 소신 이차돈은 법이 멸망하는 몸을 보였다. 양나라 진나라 통합한 8년은 정미년에서다. 서축국 달마대사가 금릉 해를 갖는 달이다. 시국은 낭지법사라 하였으니 영취산에 살면서 개법을 시작하였다.

 

則大敎興衰.必遠近相感一時.於此可信.元和中.南澗寺沙門一念.撰髑香墳禮佛結社文.載此事甚詳.

칙대교흥쇠.필원근상감일시.어차가신.원화중.남간사사문일념.찬촉향분예불결사문.재차사심상.

대교가 부흥하고 쇠망하는 법은 멀고 가까움이 서로 느끼던 때다. 믿을 정도라는 거다. 원화에 남간사 사문이던 일념은 해골 향기로 찬양하는 예불결사문을 선보이는데 여기에서 심할만큼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其略曰.昔在法興大王垂拱紫極之殿.俯察扶桑之域.以謂昔漢明感夢.佛法東流.寡人自登位.願爲蒼生,欲造修福滅罪之處.於是朝臣(鄕傳云.工目謁恭等)未測深意.唯遵理國之大義.不從建寺之神略.

기약왈.석재법흥대왕수공자극지전.부찰부상지역.이위석한명감몽.불법동유.과인자등위.원위창생,욕조수복멸죄지처.어시조신(향전운.공목알공등)미측심의.유준리국지대의.불종건사지신약.

약술한다. 예전 법흥대왕은 자극지전 앞에서 합장을 하였다. 부분마다 관찰하고서 뽕나무로 구역을 지정하였다. 예전 한명감이 그랬듯 꿈이 있었다. 불법은 동쪽으로 흐르니 과인은 지위에 등극하여라. 창생을 소원하여라. 조수복으로 죄를 멸망해하며 살려고 하였다. 이러한 조정 신하에서는 (시골 선비들이 전하는데 장인에 눈빛으로 공손하게 등급화 하는 것을 알현하기라 하였다) 측량하지만 공간에 심의를 알지 않아서 리국에서 대의를 준동한다는 것이다. 종건사가 아니라면 귀신이 지배를 한다.

 

大王嘆曰.於戱,寡人以不德.丕承大業.上虧陰陽之造化.下無黎庶之歡.萬機之暇.留心釋風.誰與爲伴.粤有內養者.姓朴字厭髑(或作異次.或云伊處.方晋之別也.譯云厭也.

대왕탄왈.어희,과인이불덕.비승대업.상휴음양지조화.하무여서지환.만기지가.류심석풍.수여위반.월유내양자.성박자염촉(혹작리차.혹운이처.방진지별야.역운염야.

대왕도 탄식을 하는데 성희롱은 과인에서는 덕이 아니다. 대업을 계승하기가 크다. 음양에 조화가 휴식을 하게 되자 검은색에 검은빛이 아래로 갈수록 없다. 일만가지에 설비에서 마음이 머물면 바람이 불어야는데 누가 짝꿍이라고 하여서 수여를 하겠는가. 양육자야 박씨 글자는 해골을 싫어한다. (혹은 제작이 다를 수 있지만 이씨도 그렇게 살 수 있다. 진국에서 방면을 구별하였는데 번역 용어로 염이 등장한 것이다.

 

 

 

,,,,獨等皆隨書者之便.乃助辭也.今譯上不譯下.故云厭髑,又厭覩等也)其父未詳.祖阿珍宗郞,習寶葛文王之子也.

,,,,독등개수서자지변.내조사야.금역상불역하.고운염촉,우염도등야)기부미상.조아진종낭,습보갈문왕지자야.

해골, 고꾸라짐, 요령, CCTV, 따위가 혼자서 모든 걸 써내니까 편하는 대로다. 말하기를 도와라. 인제 번역은 아래로 흘러가는 번역이 아니다. 옛말 염촉은 염이 보기 등급화 하였다는 것이다)사부님은 상세하지가 않아서 조상 아진 종낭은 갈문왕에서 아들로 보물을 수습하라는 것이다.

 

(新羅官爵凡十七級.其第四曰波珍喰.亦云阿珍喰也.宗其名也.習寶亦名也.羅人凡追封王者.皆稱募文王.其實史臣亦云未詳.又按金用行撰阿道碑.舍人時年二十六.父吉升.祖功漢.曾祖乞解大王)

(신라관작범십칠급.기제사왈파진식.역운아진식야.종기명야.습보역명야.라인범추봉왕자.개칭모문왕.기실사신역운미상.우안금용행찬아도비.사인시년이십육.부길승.조공한.증조걸해대왕)

신라국에서 벼슬 직위는 17등급이다. 차례대로 4번째 까지는 파진식이라 하는데 또 아진식이라 하였다. 종명이다. 습보는 명사다. 라인 사람들이 왕자를 봉양하고 추격하는 자들은 모문왕이라고 구칭하였는데, 신하 역시 사실에서는 자세하지 않게 하였다. 또 금용행이 편찬해 온 아도네 비문을 인용하려니까 모여든 때에 26년이었으니 아빠가 길승, 조부가 공한 증조가 걸해대왕이라는 것이다)

 

挺竹柏而爲質.抱水鏡而爲志.積善曾孫,望宮內之爪牙.聖朝忠臣,企河淸之登侍.時年二十二.當充舍人.(羅爵有大舍小舍等.蓋下士之秩)瞻仰容顔.知情擊目.秦云.臣聞,古人問策蒭蕘.願以危罪啓諮.王曰.非爾所爲.

정죽백이위질.포수경이위지.적선증손,망궁내지조아.성조충신,기하청지등시.시년이십이.당충사인.(라작유대사소사등.개하사지질)첨앙용안.지정격목.진운.신문,고인문책추요.원이위죄계자.왕왈.비이소위.

대나무 잣나무 뺀 것에 본질을 수정해보니 표면 거울을 안고서 지지를 수정하는데 증손자를 선도하여서 적재하고 궁내에 희망한다는 게 있으면 이빨로 손톱물기다. 성조는 충신이다. 충사인이 마땅하다. (라국에서는 벼슬직위가 크게 모이고 적게 모이는 게 있으니 순서대로 선비들이 덮었다)용안을 우러러 보자니 뜻을 알더니 눈알이 부딪친다. 진나라 때에 신하가 들은 게 있으니 고인들이 책임을 물어보는데 땔나무 꽂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계자들이 죄를 위험하게 하기로 소원하는 것이다. 임금이 말한 것은 나 아닌데에서 하여라.

 

舍人曰.爲國亡身.臣之大節.爲君盡命,民之直義.以謬傳辭.刑臣斬首.則萬民咸伏.不敢違敎.王曰.解肉秤軀,將讀一鳥.酒血摧命,自怜七獸.朕意利人.何殺無罪.汝雖作功德.不如避罪.

사인왈.위국망신.신지대절.위군진명,민지직의.이류전사.형신참수.칙만민함복.불감위교.왕왈.해육칭구,장두일조.주혈최명,자련칠수.짐의리인.하살무죄.여수작공덕.불여피죄.

사인이 말한다. 나라가 망한 몸에서는 신하에서는 큰 절개가 임금에 명령을 소진한다. 백성은 곧다. 의로움이 속이는 거로 말하기를 전한다. 형벌로 부하에 머리를 베어라. 만 백성 모두가 항복을 한다. 위반을 하거든 실행을 하지 말아라. 임금이 말한다. 고기를 몸으로 해부하다간 미래에는 새라고 읽게 생기는데 피로 제작한 술이어야 운명을 꺾는다. 스스로 영리하다는 7 짐승은 뜻이 날카로운 사람이다. 어떠한 살인조차 없으면 죄다. 공덕을 일으켜도 허물을 피하지는 않는다.

 

舍人曰.一切難捨,不過身命.然小臣夕死.大敎朝行.佛日再中,聖主長安.王曰.鸞鳳之子,有凌霄之心.鴻鵠之兒,生懷截波之勢.爾得如是.可謂大士之行乎.於焉大王權整威儀.風刀東西.霜仗南北.以召群臣.乃問,鄕等於我慾造精舍.

사인왈.일체난사,불과신명.연소신석사.대교조행.불일재중,성주장안.왕왈.난봉지자,유능소지심.홍곡지아,생회절파지세.이득여시.가위대사지행호.어언대왕권정위의.풍도동서.상장남북.이소군신.내문,향등어아욕조정사.

사인들이 말한다. 한번에 어려움을 버린다는 것은 신명도 지나치지 않음이니 작은 신하는 저녁에 죽는다. 큰 가르침으로 정부 방문을 하니 부처가 두 번 존재하길래 성주가 장안이던 것이다. 임금이 말한다. 바퀴 달린 봉황새 아들이다. 폭설을 깔보는 마음이 존재하면 아기 고라니가 번성하여서 탄생을 품은 파도가 끊어진 세력이다. 네 소득이 이러하다. 대사행 하는 정도로 보는 것이다. 대왕이 갖는 권력에서 위의가 정리정돈이 되어서 칼 비린내가 동에서 서로 불어오는데 피서리는 남에서 북으로 튀기니 군신들을 불러 모아서 시골에서는 내 욕심이 정권을 조작하느냐 하고 물어본다.

 

故作留難(鄕傳云,髑僞以王命,傳下興工創寺之意.君臣來諫.王乃責怒於髑.刑以僞傳王命)於是群臣戰戰競懼.悅侗作誓.指手東西.王喚舍人而結之.舍人失色.無辭以對.大王忿怒.勅令斬之.有司縛到衙下.舍人作誓.獄吏斬之.白乳湧出一丈.

고작류난(향전운,촉위이왕명,전하흥공창사지의.군신래간.왕내책로어촉.형이위전왕명)어시군신전전경구.열동작서.지수동서.왕환사인이결지.사인실색.무사이대.대왕분노.칙령참지.유사박도아하.사인작서.옥이참지.백유용출일장.

오래동안 제작이 어려웠다 (시골에서 전하는데 가짜 해골은 임금 명령용도로 사용하다가 공창사에서 뜻이 일어나더니 아래로 전해진다. 군신 사이에 생겨나는 간통은 임금에 책임을 해골에게로 분노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가짜 범죄로 전하여 온 것이 왕명이라는 것이다) 군신들이 전전경구를 하다가 또 기쁘면 바보가 되어 맹세를 하고 손가락으로 동쪽과 서쪽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임금이 사인을 소환하고서 결정하기는 사인들이 색을 분실하여서다. 말하기도 없는데 오로지 기다리고 있으면 대왕도 분노를 한다는 것이다. 칙령으로써 참수형을 집전하자 유사들이 마을 아래로 가서 포박을 하는데 사인들이 또 맹세를 하는 것이다. 형무소 공무원들이 집전은 시작하고 어른 몸에 흰 젖이 용출하는 것이다.

 

(響傳云.舍人誓曰,大聖法王.欲興佛敎.不願身命.多劫結綠.天垂端祥.遍示人庶.於是其頭飛出.落於金剛山頂云云)

(향전운.사인서왈,대성법왕.욕흥불교.불원신명.다겁결녹.천수단상.편시인서.어시기두비출.락어금강산정운운)

(시골에서 전한다. 사인들이 맹세해온 것을 본다. 대성하신 법왕이 불교 부흥에 욕을 보이시고 신명이 소원하지도 않았지만 두꺼운 겁에도 초록빛을 맺으신 것은 하늘에 단상을 베푸신 것이다. 여러 시인들이 보기는 머리가 떨어지자 날아간 것으로 간주하였고, 금강산 정수리에서 추락하였다는 둥 둥 둥)

 

天四黯黲,斜景爲之晦明.地六震動,雨花爲之飄落.聖人哀戚,沾悲淚於龍衣.冢宰憂傷.流輕汗於蟬冕.甘泉忽渴.魚鼈爭躍.直木先折,猿猱群鳴.春宮連鏕之侶,泣血相顧.月庭交袖之朋,斷腸惜別.望柩聞聲.如喪考妣.咸謂子推割股,未足比其苦節.弘演刳腹,詎能方其壯烈.此乃扶丹墀之信力,成阿道之本心,聖者也.

천사암참,사경위지회명.지육진동,우화위지표낙.성인애척,첨비누어룡의.총재우상.유경한어선면.감천홀갈.어별쟁약.직목선절,원노군명.춘궁연오지려,읍혈상고.월정교수지붕,단장석별.망구문성.여상고비.함위자추할고,미족비기고절.홍연고복,거능방기장렬.차내부란지지신력,성아도지본심,성자야.

하늘에 암흑이 짙다. 베껴진 햇볕도 어둠을 빛낸다. 땅이 6번 진동을 한다. 비 꽃은 폭풍 추락을 한다. 성인도 슬픔에 슬퍼한다. 눈물방울이 용옷을 적신다. 무덤 속 재상들도 상처가 근심이다. 가벼운 땀이 흘러오는 삿갓 속에는 샘이 달더니 어느새 고갈한다. 물고기와 자라가 서로 높이 뛰기를 한다. 도끼를 먼저 꺾는데 원숭이 들도 서로가 운다. 춘궁에는 연오녀에 벗이 있어서 피울음 현장을 보다가 째리기도 하는데 월정교에서 알던 소매친구는 창자 끊어짐이 아깝지만 이별을 한다. 구문해하는 소리가 들리자 죽은 왕비 생각하기를 따른다. 시체 조각내기를 끝냈다. 관절 본 뜨기를 하다가 멈추는데 배를 가르니까 피가 마른다. 장렬하게도 사망한 모양이다. 신통력으로 란지를 떠받치는 때에 아도에 본심이 성공하였다. 성인이다.

 

遂乃葬北山之西嶺.(卽金剛山也.傳雲.頭飛落處.因葬其地.今不言何也)內人哀之.卜勝地,造蘭若.名曰刺楸寺.於是家家作禮,必獲世榮,人人行道,當曉法利.眞興大王卽位五年甲子,造大興輪寺.

수내장북산지서령.(즉금강산야.전운.두비락처.인장기지.금불언하야)내인애지.복승지,조난약.명왈척추사.어시가가작예,필획세영,인인행도,당효법이.진흥대왕즉위오년갑자,조대흥륜사.

장지는 북산에서 서령쪽에서 수습을 한다 (금강산이다. 운치가 모였다. 머리가 비락에 산다. 장지를 지내는 땅이 이제 아니면 어떤 말을 하여야 하나) 슬픈 사람들이 승지에서 점을 치고 있으니까 잡초처럼 꾸몄다. 척추사라는 명칭은 집집마다 예절을 지켜서 생겨나는데 반드시 획득하였다. 꽃피는 세상에서는 사람마다 인도로 보행을 하였고 효법 이득이 짭짤해진 것이다. 진흥대왕 즉위한 5년은 갑자년인데 흥륜사를 크게 제작하였다.

 

(按國史與鄕傳.實法興王十四年丁未,始開.二十一年乙卯,大伐天鏡林.始興工.梁棟之材.皆於其林中取足.而階礎石龕皆有之.至眞興王五年甲子寺成.故云甲子.僧傳云七年誤)

(안국사여향전.실법흥왕십사년정미,시개.이십일년을묘,대벌천경림.시흥공.양동지재.개어기림중취족.이계초석감개유지.지진흥왕오년갑자사성.고운갑자.승전운칠년오)

(국사에서 향전을 인용하였다. 실제로는 법흥왕 14년 정미년이다. 개법을 시행하였다. 21년 을묘년에 천경림을 정벌하였다. 흥공이 시작하였다. 양동 마을 소재로 모두 취합을 마치자 만족하였다. 감실 초석 계단 제작하는데 모두 사용하였다. 진흥왕 5년 갑자년이 되어서야 사찰을 완성하였으니 갑자라고도 불리는 해동고승전 7년은 오류라는 것이다)

 

大淸之初,梁使沈湖將舍利.天嘉六年,陳使劉思並僧明觀.奉內經並次.寺寺星張.塔塔鴈行.竪法幢.懸梵鏡.龍象釋徒.爲寰中之福田.大小乘法.爲京國之慈雲.他方菩薩,出現於世(謂芬皇之陳那,浮石寶蓋以至洛山五臺等是也)

대청지초,양사심호장사이.천가육년,진사류사병승명관.봉내경병차.사사성장.탑탑안행.수법당.현범경.룡상석도.위환중지복전.대소승법.위경국지자운.타방보살,출현어세(위분황지진나,부석보개이지락산오대등시야)

대청년 처음은 양나라 사신 심호가 관청에 이득실현을 하려고 천가 6년에 재림하였다. 진쪽 사신 류사가 스님에게도 명관 기능을 병합하였는데 내경을 합치고 봉인을 마쳤다. 절절들이 성장을 하고 탑탑에도 기러기가 비행을 한다. 비루한 법당에 현각법사 범어경전을 거울삼으니 용과 코끼리가 서로 달아난다. 천자가 남겨 둔 복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승법과 소승법이 공존하니까 경국을 사랑하는 구름이 모여들었고 타지역 보살이 세상을 위하여 출현을 하는 것이다 (분황사를 진열해둔 것은 어쩔 것인가. 부석사 보물로 덮고 낙산에 돈대 5대를 가지런히 하였다)

 

西域名僧,降臨於境.由是倂三韓而爲邦.掩四海而爲家.故書德名於天?之樹.影神迹於星河之水.豈非三聖威之所致也(謂我道,法興,厭髑也)

서역명승,강림어경.유시병삼한이위방.엄사해이위가.고서덕명어천패지수.영신적어성하지수.기비삼성위지소치야(위아도,법흥,염촉야)

서역국가 명승이 공간에 강림하였다. 때에 3한은 병합하고서 방합이라 하는데 4해를 덮더니 집이라는 것이다. 예 서적과 덕에서는 천패 나무를 알리고 그림자 귀신에서 흔적이 하수물을 빛내고 3성 위엄이 아니고서야 소치하기가 안된다는 것이다. (아도는 법을 부흥하게 하여서 염촉이라는 존재다)

 

降有國統惠隆,法主孝園,金相郞,大統鹿風,大書省眞恕,波珍喰金嶷等.建舊塋.樹豊碑.元和十二年丁酉八月五日,卽第四十一憲德大王九年也.

강유국통혜륭,법주효원,금상랑,대통녹풍,대서성진서,파진식금억등.건구영.수풍비.원화십이년정유팔월오일,즉제사십일헌덕대왕구년야.

국통이 혜륭에게 내려온다. 법 주인은 효원이다. 금상 화랑은 대통한 녹이 불어온다. 진실로 용서를 써보니 파진식과 도금을 나란히 하고서 오랜 무덤을 건설하고 나무와 비석을 풍성하게 하고나니까 원화 12년 정유년 85일에 마쳤다. 41대 헌덕대왕 9년이다.

 

興輪寺永秀禪師(于時瑜伽諸德皆稱禪師)結湊斯塚禮佛之香徒.每月五日.爲魂之妙願.營壇作梵.又鄕傳云.鄕老每當忌旦.設社會於興輪寺.則今月初五.乃舍人捐軀順法之晨也.

흥륜사영수선사(우시유가제덕개칭선사)결주사총예불지향도.매월오일.위혼지묘원.영단작범.우향전운.향노매당기단.설사회어흥륜사.칙금월초오.내사인연구순법지신야.

흥륜사에 수선사가 영위한다. (수선사는 유교 더하기 제덕 모두를 갖춘 선사를 나타낸다) 사총에 모여서 결정을 하는 것은 예불을 하면 지향하는 공동체다. 매월 5일마다 넋을 구묘하게 끔 소원하였으니 제단을 경영하려고 범어를 쓴 것이다. 또 시골에서도 전하는데 시골 노인들은 언제나 아침마다 당기를 한다는 것이다. 사회자는 흥륜사에서 설명을 하는데 지금 달에 첫 5일로 한 것이다. 사인들이 몸을 버리고 법에 순종한다는 시간대가 신시다.

 

嗚呼.無是君,無是臣.無是臣,無是功.可謂劉葛魚水.雲龍感會之美歟.法興王旣擧廢立寺.寺成.謝冕旒,披方袍.施宮戚爲寺隷(寺隷至今稱王孫,後至太宗王時.宰輔金良圖信向佛法.有二女,曰花寶,蓮寶.捨身爲此寺婢.又以逆臣毛尺之族.沒寺爲隷.二族之裔今不絶)

오호.무시군,무시신.무시신,무시공.가위류갈어수.운룡감회지미여.법흥왕기거폐입사.사성.사면류,피방포.시궁척위사례(사례지금칭왕손,후지태종왕시.재보금랑도신향불법.유이여,왈화보,연보.사신위차사비.우이역신모척지족.몰사위례.이족지예금불절)

새가 울어댄다. 인정하는 군이 없고, 신하도 없다. 인정하는 신하 없으니 공로도 없다. 칡 고기 물이 사살하는 것이다. 구름은 용에게 감동을 하여서 아름답게 모여 주는데 법흥왕이 입사한다는 것을 폐지하고 거행하고 있으니 절이 완성하여 간다. 면류관과 깃발을 사례하여라. 옷을 나누어라. 집에 있을 겨레들이 보시를 하여서 사찰 재산이 증식하여간다 (사례라는 것은 현재 왕손이다. 나중에 태종왕을 말한다. 재산 보금 량도로 불법을 향하게 믿으라. 두 여자가 있다. 화보 연보다. 몸을 버리고 사비라고 하였다. 반역하는 신하에서 겨레중에는 침몰하는 사찰이 례라고 하였으니 화보 연보에서 겨레들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다.

 

主住其寺.躬任弘化.眞興乃繼德重聖.承袞職處九五.威率百僚.號令畢備.因賜額大王興輪寺.前王姓金氏.出家法雲.字法空(僧傳與諸說,亦以王妃出家名法雲,名法雲.又眞興王爲法雲.又以爲眞興王之妃名法雲.頗多疑混)

주주기사.궁임홍화.진흥내계덕중성.승곤직처구오.위솔백료.호령필비.인사액대왕흥륜사.전왕성김씨.출가법운.자법공(승전여제설,역이왕비출가명법운,명법운.우진흥왕위법운.우이위진흥왕지비명법운.파다의혼)

주인이 사찰에 살아서 몸 껏 홍화를 맡는다. 진흥왕 시절에서는 덕을 계승하여서 완성이 무거워지자 곤직을 계승하고서 95년을 살았다. 위엄있게 백번을 통솔하는 동료는 명부에 호령하면 준비를 마치고 액땜하는 대왕에게 흥륜사행을 다하였다. 앞 선 임금은 김씨로 출가명은 법운으로 이름이 법공이다 (고승전에서 전해오는 여러 말들은 왕비도 출가명에서는 법운이요 이름이 법운이라는 것인데 진흥왕에서도 법운이라고 하고 진흥왕에서 왕비 법명도 법운이라는 것이다. 파혼이 많아서 의심스럽게 섞었다)

 

冊府元龜云.姓募.名秦.初興役之乙卯歲.王妃亦創永興寺.慕史氏之遺風.同王落彩爲尼.名妙法.

책부원귀운.성모.명진.초흥역지을묘세.왕비역창영흥사.모사씨지유풍.동왕락채위니.명묘법.

책부원귀를 보면 성은 모 이름은 진. 처음 부역이 일어난 을묘년 해는 왕비 역시 영흥사를 창사하였다. 사씨를 흠모하다가 분실한 나머지 동시대 임금님이 글자에 추락하여서 니인 것이다. 이름은 묘법이다.

 

亦住永興寺.有年而終.國史云.建福三十一年.永興寺塑像自壞.未幾,眞興王妃比丘尼卒.按眞興乃法興之姪子.妃思刁夫人朴氏.牟梁里英失角于之女.亦出家爲尼.而非永興寺之創主也.

역주영흥사.유년이종.국사운.건복삼십일년.영흥사소상자괴.미기,진흥왕비비구니졸.안진흥내법흥지질자.비사조부인박씨.모량리영실각우지여.역출가위니.이비영흥사지창주야.

또 영흥사에 산다. 올해를 마감할 때 신라국사를 본다. 건복 31년이다. 영흥사에 소 형상이 무너졌다. 눈치채지 않았다. 진흥왕에서 왕비는 비구니 병사다. 진흥왕이 법흥왕에서 질자다. 왕비는 사조부 사람으로 박씨다. 모량리 영실각에서 여자다. 출가하면서 중이 되었으니 영흥사 창사주가 아닐 수도 있다.

 

則恐眞字當作法.謂法興之妃巴刁夫人爲尼者之卒也.乃創寺立像之主故也.二興捨位出家.史不書.非經世之訓也.

칙공진자당작법.위법흥지비파조부인위니자지졸야.내창사입상지주고야.이흥사위출가.사불서.비경세지훈야.

공진 글자를 본떠서 작법을 맡으니까 법흥왕 왕비는 파조부 사람으로 중이라는 병사다. 사찰 창사 시절에 입상은 오랜 주인이 하였다. 영흥사 흥륜사에서 출가하면서 역사가 쓰여지지 않았으니 경세지훈이 아니다.

 

又於大通元年丁未.爲梁帝創寺於熊川州.名大通寺(熊川卽公州也.時屬新羅故也.然恐非丁未也.乃中大通元年巳酉歲所創也.始創興輪之丁未.未暇及於他郡立寺也)

우어대통원년정미.위양제창사어웅천주.명대통사(웅천즉공주야.시속신라고야.연공비정미야.내중대통원년사유세소창야.시창흥륜지정미.미가급어타군입사야)

대통 원년에서 정미년이다. 양나라 제창사가 웅천주에 생겼다. 이름을 대통사라 하였다 (웅천은 공주다. 라 지역을 새롭게 엮을 때다. 정미년은 두려울 시즌이 아니었다. 대통 원년해에 창사를 하였다. 흥륜사 창사 시작은 정미년이다. 미칠 틈이 없으니까 다른 지역에 사찰이 입장한 것이다)

 

讚曰.聖智從來萬世謀.區區輿議謾秋毫.法輪解逐金輪轉.舜日方將佛日高.右原宗.徇義輕生已足驚.天花白乳更多情.俄然一劒身亡後.阮阮鐘聲動帝京.右厭髑

찬왈.성지종래만세모.구구여의만추호.법륜해축금륜전.순일방장불일고.우원종.순의경생이족경.천화백유갱다정.아연일검신망후.원원종성동제경.우염촉

편찬하여 전한다. 성현에 즐기로 1만 세상 전략이 오는데 물류 노선을 의논하니까 가을을 속여온다. 법륜 해석은 금륜 회전을 통하여야 하는데 순일날 방장은 부처님 오신날 만을 높인다. 원종을 숭상하여라. 순의경이 탄생하여도 놀라지도 않으니까 하늘 꽃 백유는 다시 뜻이 많아만 간다. 실크로드 길에서는 한 곳에 검과 몸이 채워지는 것은 망한 후일에 세상이라는데 월금 종 소리로 여러 서울을 움직여야 하나. 염촉을 숭상하여라.

 

法王禁殺

법왕금살

임금도 금지하는 살인법

 

百濟,第二十九主法王諱宣.或云孝順.開皇十年己未卽位.是年冬,下詔禁殺生.放民家所養鷹鸇之類.焚漁獵之具.一切禁止.

백제,제이십구주법왕휘선.혹운효순.개황십년기미즉위.시년동,하조금살생.방민가소양응전지류.분어렵지구.일체금지.

백제국에서 29주에 살던 법왕은 휘선이다. 효순이라고도 한다. 개황 10년 기미년에 즉위하였다. 즉위년 겨울에 아래로 살생 금지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민가에서 방목하고 양육하는 새 종류다. 불내기 사냥하기 고기잡기 도구들도 한 번에 금지하였다.

 

明年庚申.度僧三十人.創王興寺於時都泗泚城.(今扶餘)始立栽而升遐.武王繼統.父基子構.歷數紀而畢成.其寺亦名彌勒寺.附山臨水.花木秀麗.四時之美具焉.

명년경신.도승삼십인.창왕흥사어시도사차성.(금부여)시입재이승하.무왕계통.부기자구.력수기이필성.기사역명미륵사.부산림수.화목수려.사시지미구언.

같은 년 경신년이다. 제도권에 승려 30인이 왕흥사 창궐하자 신도시 사차성에 (부여다) 입재를 시작하였고 승에서 가까워간다. 무왕이 승계를 통일하였다. 아빠는 기 아들은 구. 무왕 족보를 분실하자 마침을 끝낸다. 사찰 명칭도 미륵사다. 산에 붙어서 물도 들여다보고 꽃이 곱고 나무가 높이 솟으니 언제나 아름다움을 유지하였다.

 

王每命舟.沿河入寺.賞其形勝壯麗(與古記所載小異.武王是貧母與池龍通交而所生.小名薯蕷.卽位後諡號武王.初與王妃草創也)

왕매명주.연하입사.상기형승장려(여고기소재소리.무왕시빈모여지룡통교이소생.소명서여.즉위후시호무왕.초여왕비초창야)

임금은 언제나 명령에 술 빚기 하는데 하입사로 연결하였다. 모형이 장려하게 승리해야만 상을 줬다 (백제본기에서 기록이 조금 다른 것은 무왕에서 엄마가 지룡과 통교를 통하여 탄생하지 않았음이다. 꼬마 무왕에서 이름은 서여. 즉위를 하고 시호로 받은 것이 무왕이다. 처음을 준 류찬공주가 왕비로 있음은 풀 맺은 인연에서다)

 

讚曰.詔寬䎉狘千丘惠.澤洽豚魚四海仁.莫辱聖君輕下世.上方兜率正芳春.

찬왈.조관휼월천구혜.택흡돈어사해인.막욕성군경하세.상방두솔정방춘.

편찬하여 말한다. 조관이 월천으로 흘러가는 언덕에 은혜는 못이 돼지와 고기와 사해를 인이 작용하여야 윤기가 좔좔 흘러가니 수치가 없을 성군에서는 아래 세상이 가볍다. 상방면에 투구는 방춘일을 바로잡게 통솔한다.

寶藏奉老 普德移庵

보장봉노 보덕이암

보장왕을 봉양하는 노인

보덕으로 옮겨가는 바위

 

高麗本記云.麗季武德,貞觀間.國人爭奉五斗米敎.唐高祖聞之.遣道士,送天尊像,來講道德經.王與國人聽之.卽第二十七代榮留王卽位七年,武德七年甲申也.

고려본기운.려계무덕,정관간.국인쟁봉오두미교.당고조문지.견도사,송천존상,래강도덕경.왕여국인청지.즉제이십칠대영류왕즉위칠년,무덕칠년갑신야.

고구려 본기를 본다. 고구려 말년에 무덕은 정사를 보던 틈에 나라 사람이 정쟁으로 오두미교를 봉양하는 것이다. 당나라 고조가 듣더니 도사를 파견하고 높은 형상을 송천하는 것이다. 도덕경을 강학하여야 부른다고 하니 임금은 나라 사람에게 경청을 하는 것이다. 즉 제27대 영류왕이 즉위한 7년은 무덕도 7년이고 갑신년인 것이다.

 

明年遣使往唐.求學佛老.唐帝(謂高祖也)許之.及寶藏王卽位(貞觀十六年壬寅也)亦欲倂興三敎.時寵相蓋蘇文,說王以儒釋竝熾,而皇冠未盛.特使於唐求道敎.時普德和尙住盤龍寺.憫左道匹正,國祚危矣.

명년견사왕당.구학불노.당제(위고조야)허지.급보장왕즉위(정관십육년임인야)역욕병흥삼교.시총상개소문,설왕이유석병치,이황관미성.특사어당구도교.시보덕화상주반룡사.민좌도필정,국조위의.

명년에 파견한 사신이 당나라로 가면서 학문을 구한다는 부처가 노인이다. 당나라 임금 고조가 허락을 하고, 급하게 보장왕이 즉위하는데(정관 16년 임인년이다)3교가 부흥하려면 병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에 연개소문이 사랑을 하고 보고 말하는 임금은 유학을 풀고서 병합하려는 세력이 강하다고 하시니 급기야 임금이 쓰는 갓을 완성하지 않았다. 특사파견을 하여서 당나라에서 도교를 구하여 오는데 때에 보덕화상이 반룡사에 거주를 하였다. 좌도가 맞서니 바로잡는게 근심이라서 국조가 위험할 지경이던 것이다.

 

屢諫不聽.乃以神力飛方丈.南移于完山州(今全州也)孤大山而居焉.卽永徽元年庚戌六月也(又本傳云,乾封二年丁卯三月三日也).未幾國滅(以摠章元年戊辰國滅.則計距庚戍十九年矣).

누간불청.내이신력비방장.남이우완산주(금전주야)고대산이거언.즉영휘원년경술육월야(우본전운,건봉이년정묘삼월삼일야).미기국멸(이총장원년무진국멸.칙계거경수십구년의).

상시 간언에서도 듣지를 않았다. 신통력으로 날아다니는 방장님이 남쪽 완산주로 이전을 하셨는데 (전주다)외로운 대산 속에 거주하신 것이다. 영휘 원년은 경술년 6월이다 (고구려 본기가 전하는데 건봉 2년은 정묘년 33일이다) 국가 멸망하는 낌새는 아니다(총장 원년은 무진년으로 나라 망한다. 19년 정도는 방침이 소멸하여도 지켜낸 것이다)

 

今景福寺有飛來方丈是也云云(己上國史).眞樂公留詩在堂.文烈公著傳行世.又按唐書云.先是隋煬帝征遼東.有裨將羊皿,不利於軍.將死,

금경복사유비래방장시야운운(기상국사).진락공류시재당.문렬공착전행세.우안당서운.선시수양제정요동.유비장양명,불이어군.장사,

경복사에는 방장이 날아온다고 하였다 (위의 국사와 같다) 진실은 낙랑공은 시학에 머물면서 학교에 있다는 것이다. 문렬공은 전달자에 붙었다고 하고, 당서를 인용 해보는데 앞선 시대에 수나라 양제가 요동을 정벌하면서 양명이 돕고만 있으니까 군대가 이득이 아니면 사망하려고 한 것이다.

 

有誓曰.必爲寵臣滅彼國矣.及蓋氏擅朝.以盖爲氏.乃以羊皿,是之應也.又按高麗古記云.隋煬帝以大業八年壬申.領三十萬兵.渡海來征.

유서왈.필위총신멸피국의.급개씨천조.이개위씨.내이양명,시지응야.우안고려고기운.수양제이대업팔년임신.령삼십만병.도해래정.

맹세가 있어서 본다. 반드시 신하를 사랑하다간 국가가 멸망한다는 것이다. 천조국에서 개씨가 미치니까 개씨라고 하는 것이다. 지난 양명도 호응하였다. 또 고구려 본기를 본다. 수나라 양제가 대업을 이루는 8년은 임신년이다. 30만병력이 주요 요충지에서 바다를 도하하고서 정벌을 하려는 것이다.

 

十年甲戌十月,高麗王(時第三十六代嬰陽王立二十五年也).上表乞降.時有一人,密持小弩於懷中.隨持表使,到煬帝舡中.帝奉表讀之.弩發中帝胸.帝將旋師.

십년갑술십월,고려왕(시제삼십육대영양왕입이십오년야).상표걸강.시유일인,밀지소노어회중.수지표사,도양제강중.제봉표두지.노발중제흉.제장선사.

10년인 갑술년 10월에 고구려왕(때에는 36대 영양왕이 즉위년 25년이다) 표문을 빌어 항복을 하자는데 때에 1인이 있었다. 소노를 품은자가 촘촘히 보전하고 있더니 사신에게 표문을 가져라고 수행을 하는데 양제강에 도착을 하였다. 임금님 봉양하는 표문을 읽으라 하였다. 소노가 발성하는 중제에 가슴은 임금에서 선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謂左右曰.朕爲天下之主.親征小國而不利.萬代之所嗤.時右相羊皿奏曰.臣死爲高麗大臣.必滅國.報帝王之讐.帝崩後,生於高麗.十五,聰明神武.時武陽王聞其賢(國史榮留王名建武.或云建成.而此云武陽.未詳)

위좌우왈.짐위천하지주.친정소국이불리.만대지소치.시우상양명주왈.신사위고려대신.필멸국.보제왕지수.제붕후,생어고려.십오,총명신무.시무양왕문기현(국사영류왕명건무.혹운건성.이차운무양.미상)

좌우 대신이 말한다. 짐은 천하에서 주인이다. 몸 소 정벌하는 소국은 이익이 아니다. 1만 병력이 대신한다는 것은 웃음거리다. 때에 양명이 상소로 말한다. 신하는 고구려 대신들이 사망한 거로 보입니다. 반드시 멸망하는 국가입니다. 보제왕은 원수입니다. 임금이 붕어한 후에는 고구려에 탄생을 하였습니다. 15년에는 총명한 명신으로 무용을 자랑합니다. 때에 무양은 임금이 듣기로도 현명하다고 합니다 (영류왕에서 이름은 건무 또는 건성이다. 무양이라는 설명은 상세하지가 않다)

 

徵入爲臣.自稱姓蓋,名金.位至蘇文.乃侍中職也(唐書云.盖蘇文自謂莫離支.猶中書令.按神誌秘詞序云.蘇文大英弘序幷注.則蘇文乃職名.有文證.而傳云,文人蘇英弘序.未詳孰是).

징입위신.자칭성개,명금.위지소문.내시중직야(당서운.개소문자위막리지.유중서령.안신지비사서운.소문대영홍서병주.칙소문내직명.유문증.이전운,문인소영홍서.미상숙시).

징수로 들어온 자는 신하로 하였다. 성을 개씨로 구칭하였다. 이름은 금이다. 지위가 소문이다. 소문은 시중드는 직업이다 (당서를 보았다. 개소문은 막리지다. 중서령 부서에 있다. 신지비사를 차례대로 인용하였다. 소문은 병주 지역을 차례대로 대영을 넓히는 것이다. 법적으로 소문은 직업 이름이다. 문자가 증거로 있으니까 전달에서 보니 문인 소영홍이 차례를 잡았다. 상세하지 않을 자는 누구냐?)

 

金奏曰.鼎有三足.國有三敎.臣見國中.唯有儒釋.無道敎.故國危矣.王然之.奏唐請之.太宗遣敍達等道士八人(國史云.武德八年乙酉,遣使入唐求佛老.唐帝許之.據此則羊皿自甲戍年死.而托生于此.則才年十餘歲矣.

금주왈.정유삼족.국유삼교.신견국중.유유유석.무도교.고국위의.왕연지.주당청지.태종견서달등도사팔인(국사운.무덕팔년을유,견사입당구불노.당제허지.거차칙양명자갑수년사.이탁생우차.칙재년십여세의.

개금이 말한다. 솥에는 뿌리가 3군데 있어서 국가도 교가 3개가 있다. 신하가 보는 국가는 오히려 유학이 풀어지고 있어서 도교가 없으니 오랫동안 국가는 위험하게 있다는 것이다. 임금도 그러한지 당나라가 주문한 요청을 보는데 당나라 태종이 파견해온 서신과 도달서 품목에 도사가 8인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본기에서는 무덕 8년은 을유년이다. 당나라에서 구급하는 부처 노인을 구하려고 사신을 파견하니 당나라 임금이 허락을 하였고 양명 스스로 갑옷을 입고 수년간 사망하였다는 소문에 의지를 하였다. 밀림 작용으로 태어난 이 곳에서 재능 껏 10년을 지냈다

 

而云寵宰,說王遣請.其年月必有一誤.今兩存).王喜以佛寺爲道舘.尊道士,坐儒士之上.道士等行鎭國內有名山川.古平壤城勢新月城也.

이운총재,설왕견청.기년월필유일오.금량존).왕희이불사위도관.존도사,좌유사지상.도사등행진국내유명산천.고평양성세신월성야.

재상에게 있을 사랑에서는 둥둥. 설명하는 임금도 파견을 요청하시니 그년 월은 반드시 있다는 것이 첫 오류다. 고구려 본기와 당사 양쪽에 있어라)임금이 기뻐서 불사하는 공간을 도관이라 하였다. 도사를 높인다. 유학 선비가 앉는다. 위에는 도사가 국내성을 행진하니 산천마다 명함이 있었다. 오랜 평양성 세력이 새로운 월성이다.

 

道士等呪勑南河龍.加築爲滿月城.因名龍堰城.作讖曰龍堰堵.且云千年寶藏堵,或鑿破靈石(俗云都帝嵓.亦云朝天石.蓋昔聖帝騎此石朝上帝故也).

도사등주래남하룡.가축위만월성.인명룡언성.작참왈룡언도.차운천년보장도,혹착파령석(속운도제암.역운조천석.개석성제기차석조상제고야).

도사는 등주에서 남하룡을 위로한다. 등주에 축성을 부가하니까 만월성이라 하였다. 룡언성에 인연을 둔다. 비결이 생겨나더니 룡언도와 보장도는 천년을 운행한다고 하였으니 신령이 돌을 깬다고도 하였다. (풍속에 도제암은 또 조천석이라고 하는데 석성임금님 기병을 덮는 곳에서 석조가 상제였음을 오래동안 흐른다)

 

蓋金又奏築長城東北西南.時男役女耕.役至十六年乃畢.及寶藏王之世.唐太宗親統以六軍來征.又不利而還.高宗總章元年戊辰,右相劉仁軌,大將軍李勣,新羅金仁問等攻破國滅.擒王歸唐.寶藏王庶子率四千餘家,投于新羅(與國史少殊.故幷錄).

개금우주축장성동북서남.시남역여경.역지십육년내필.급보장왕지세.당태종친통이육군래정.우불이이환.고종총장원년무진,우상류인궤,대장군이적,신라김인문등공파국멸.금왕귀당.보장왕서자솔사천여가,투우신라(여국사소수.고병녹).

개금은 또 장성에서 동북쪽 서남쪽을 상소로 건축하였다. 서남쪽은 여자에게도 밭갈기를 부역하였다. 부역은 16년간 계속하였다. 보장왕 세력권이 미치더니 당나라 태종이 6군사를 통섭으로 정벌 계획을 세운다. 또 이득이 아니면 귀가도 멈춘다. 당나라 고종 총장 원년은 무진년이다. 우상 류인궤와 대장군 이적 신라국 김인문 등들에게 공격을 받아 국가가 멸망하였고 임금을 생포하여서 당나라로 귀가하는데 보장왕에겐 서자들이 4천여가를 통솔하면서 신라국에 투항을 하는 것이다. (국사에서는 약간명을 사형하였다고 전하고, 오래동안 녹이 함께 하였다고 전한다)

 

大安八年辛未,祐世僧統到孤大山景福寺飛來方丈.禮普聖師之眞.有詩云.涅槃方等敎,傳受自吾師云云.

대안팔년신미,우세승통도고대산경복사비래방장.예보성사지진.유시운.열반방등교,전수자오사운운.

대안 8년은 신미년이다. 세상을 속여온 승통에서 행운이 고대산 속에 경복사에는 방장이 날아온다. 성사에서 진실은 예물 미치기다. 시를 뽑았다. 열반하는 방등 가르침에는 전수자가 내 스승이라는 둥둥

 

至可惜飛房後.東明古國危.跋云.高麗藏王.()於道敎.不信佛法.師乃飛房,南至此山.後有神人.現於高麗馬嶺.告人云.汝國敗亡無日矣.

지가석비방후.동명고국위.발운.고려장왕.()어도교.불신불법.사내비방,남지차산.후유신인.현어고려마령.고인운.여국패망무일의.

날아가는 것을 아끼는 방향 후에는 동명고국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고구려 보장왕은 도교에 감동하였다. 불법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스승은 방마다 ᅟᅡᆯ아다녀서 남쪽 차산에 도착하고서는 후일에 신인으로 있었으니 고구려 마령에 재현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너희 국가는 패하여 망한다는 것은 일이 없어서다는 것이다.

 

具如國史.餘具載本傳與僧傳.師有高弟十一人.無上和尙與弟子金趣等,創金洞寺.寂滅,義融二師創珍丘寺.智藪創大乘寺.一乘與心正,大原等,創大原寺.水淨創維摩寺.四大與契育等,創中臺寺.開原和尙,創開原寺.明德創燕口寺.開心與普明亦有傳.皆如本傳.

구여국사.여구재본전여승전.사유고제십일인.무상화상여제자금취등,창금동사.적멸,의융이사창진구사.지수창대승사.일승여심정,대원등,창대원사.수정창유마사.사대여결육등,창중대사.개원화상,창개원사.명덕창연구사.개심여보명역유전.개여본전.

갖춰진 국사를 따른다. 해동고승전을 본전에 삽입하여도 남는다. 스승님 계시면 높은 아우 11명이 있다. 무상화상이 제자금취를 나란히 하여 주고 금동사를 창사하였다. 적멸보궁과 옳게 융합하는 스승 2명이 진구사를 창사하였다. 지수는 대승사를 창궐하였다. 1승하면 누구나 심정이 있고 대원 등이 대원사를 창사하였다. 수정은 유마사를 창사하였다. 사찰 5개는 사대와 더불어 끊겼으니 보육을 하고서 돈대를 각각 갖추기에 개원화상이 개원사를 창사하고 명덕이 연구사를 창사하고 개심하면 보명이 있다는 것이 유전하였다. 모두 본전에 있는 것이다.

 

讚曰.釋氏汪洋海不窮.百川儒老盡朝宗.麗王可笑封沮洳.不省滄溟徒臥龍

찬왈.석씨왕양해불궁.백천유노진조종.려왕가소봉저여.불성창명도와룡

편찬하였다. 석씨 왕양은 바다가 아닌데에서 전부를 다하였고 선비 노인은 조종이 줄어들도록 하천을 백번 건너고 고구려 임금은 웃음 정도로 봉양하고 여 지역을 막았으니 살피지 않은 창명이 와룡을 돕는 자다.

 

東京興輪寺金堂十聖

東壁, 坐庚向泥塑 我道 厭髑 惠宿 安含 義湘

西壁, 坐甲向泥塑 表訓 蛇巴 元曉 惠空 慈藏

동경흥륜사금당십성

동벽, 좌경향니소 아도 염촉 혜숙 안함 의상

서벽, 좌갑향니소 표훈 사파 원효 혜공 자장

동경 소재 흥륜사에는 금당에 있을 성인 10

동쪽 벽면 좌경을 하고 니소를 향한다. 아도 염촉 혜숙 안함 의상

서쪽 병면 좌갑한 채로 니소를 향한다. 표훈 사파 원효 혜공 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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