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所觀音 衆生寺
삼소관음 중생사
관음사 3개에서 중생이라는 사찰
新羅古傳云 中華天子有寵姬 美艶無雙 謂古今圖畫尠有如此者 乃命善畫者寫眞(畫工傳失其名 或云張僧繇 則是吳人也
신라고전운 중화천자유총희 미염무쌍 위고금도화선유여차자 내명선화자사진(화공전실기명 혹운장승요 칙시오인야
신라에서 오래동안 전해온다. 중화는 천자국으로 있어서 포희를 사랑한다. 아름답기와 곱기도 없이 쌍으로 존재해오는데 고금이란 시간을 전해오는 도화에서는 선이라는 것이다. 선이란 명령에 따라 그림을 그려가는데 사진을 일컫는다 (화공은 전하는데 명부를 분실하였으나 승요라고도 하기도 한 것은 오류가 만들어 낸다.
梁天監中 爲武陵王國侍郞直秘閣知畫事 歷右將軍吳興太守 則乃中國梁陳間之天子也
양천감중 위무능왕국시랑직비각지화사 력우장군오흥태수 칙내중국양진간지천자야
양나라 때 하늘이 거울을 보고서 무능왕국 시대에 시랑 벼슬인 비각은 화사를 알았다. 우장군 오홍태수를 지낸다. 중국에서는 양나라와 진나라 사이를 천자라고 하였다.
而傳云唐帝者 海東人凡諸中國爲唐爾 其實未詳何代帝王 兩存之)
이전운당제자 해동인범제중국위당이 기실미상하대제왕 량존지)
당제자들이 속여오기를 해동에서 사람이라면 모든 것은 중국이고 내 정체는 당나라인 것이니 실제로 상세하지도 않을 시대에 제왕이라고 할 것이라면 양쪽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其人奉勅圖成 誤落筆汚赤 毁於臍下 欲改之而不能 心疑赤誌必自天生 功畢獻之
기인봉칙도성 오락필오적 훼어제하 욕개지이불능 심의적지필자천생 공필헌지
비각은 칙서를 받들어 그림을 그렸고 실수라고 하여도 떨어뜨린 붓은 적색을 어지럽혔다. 배꼽에 탯줄이 아문다. 고치기를 한다지만 잘하지 않아서 마음이 하는 의심스러운 적자는 꼭 기록을 해두었더니 하늘에서 탄생하였고 공적을 마치자 봉헌도 하였다.
帝目之曰 形則逼眞矣 其臍下之誌 乃所內秘 何得知之竝寫 帝乃震怒 下圓扉將加刑
제목지왈 형칙핍진의 기제하지지 내소내비 하득지지병사 제내진노 하원비장가형
제왕에 안목으로 말하는데 모형이 핍박을 받을 진리다. 배꼽에서 아래를 기록한다는 것은 탯줄이 있다가도 없어진다는 것이니 어떠한 실현으로 알 것 같아도 나란히 베끼지를 못한다. 임금이 움직인다. 힘쓰려는데 신발장 정도면 형벌이 더하여 있다고 본다.
丞相奏云 所謂伊人其心且直 願赦宥之 帝曰彼旣賢直 朕昨夢之像 畫進不差則宥之 其人乃畫十一面觀音像呈之 協於所夢 帝於是意解赦之 其人旣免
승상주운 소위이인기심차직 원사유지 제왈피기현직 짐작몽지상 화진불차칙유지 기인내화십일면관음상정지 협어소몽 제어시의해사지 기인기면
상주자가 연속한다. 이윤이라는 그 사람에서 마음이 직접하니까 소원이 사유하기다. 임금이 말하는데 저자는 기현직이다. 현직몽하는 꼴이다. 그림을 그리는데 실수한다는 것이 아니여야 용서한다는 것이니 사람들이 11면에 해당하는 그림그리기를 관음이 갖는 형상대로 드린다는 것이 꿈 속에 끼여 있는 존재라서 임금이 뜻을 해석하고도 남을 용서여야 사면을 받는다는 것이다.
乃與博士芬節約曰 吾聞新羅國敬信佛法 與子乘桴于海 適彼同修佛事 廣益仁邦 不亦益乎
내여박사분절약왈 오문신라국경신불법 여자승부우해 적피동수불사 광익인방 불역익호
박사에게 향기를 절약하여라고 덧붙이니 나는 신라국이 불법을 믿고 공경한다고 듣는데 자승이 붓을 바다로 향하여 던진다. 한 가지로 수행하는 불사 방법이 나라를 낳아서 증가하기가 넓었고 아니거든 이익인 것이다.
遂相與到新羅國 因成此寺大悲像 國人瞻仰 禳禱獲福 不可勝記 羅季天成中 正甫崔殷諴久無胤息 詣玆寺大慈前祈禱 有娠而生男 未盈三朔 百濟甄萱襲犯京師 城中大潰
수상여도신라국 인성차사대비상 국인첨앙 양도획복 불가승기 라계천성중 정보최은함구무윤식 예자사대자전기도 유신이생남 미영삼삭 백제견훤습범경사 성중대궤
신라국에는 수상을 준다고 하는데 대비 형상을 완성한 인연으로 나라 사람이 첨부터 추앙하고 양심을 빌리니까 복을 획득하고 기록하기는 이겨내지를 못한다. 라국 말년에 천성에서는 꼽는 정과 미성한 최가 함께 윤달 호흡이 오래동안 없었으니 예자사에 대자전으로 기도를 하면 임신을 통하여 남자형상을 가지니 초하루를 3번 채우지 않으면 백제국 견훤이 경사를 침입하고 습격할 것이니 도시가 소멸한다는 것이다.
殷諴抱兒來告曰 隣兵奄至 事急矣 赤子累重 不能俱免
은함포아래고왈 린병엄지 사급의 적자누중 불능구면
은색 함포속 아이에게도 지랄한다. 이웃 군대가 엄포를 놓으면 일이 급하다. 적자는 묶어서 무겁게 하지를 않으면 용서하기도 잘한다.
若誠大聖之所賜 願借大慈之力覆養之 令我父子再得相見 涕泣悲惋 三泣而三告之 裹以襁褓 藏諸猊座下 眷眷而去 經半月寇退 來尋之 肌膚如新浴 貌體嬛好
약성대성지소사 원차대자지력복양지 령아부자재득상견 체읍비완 삼읍이삼고지 과이강보 장제예좌하 권권이거 경반월구퇴 래심지 기부여신욕 모체현호
큰 정성을 성인이 내려줄 것 같다면 원력을 빌린 대자력은 보육을 뒤집는다. 대통령아, 내 아빠와 자식은 서로 본다는 것을 재차 실현하는데 물방울이 슬프냐 한탄하냐 이슬 적셔가면서 3번째 고통이 쌀을 담는 포대기에 있음을 알아라. 여러 사자님 자리를 아래로 감출것이니 자주 볼꺼면 오지마. 내 눈에 반달도 도둑은 퇴각하면서 미래에 나를 찾을 것이니 피부를 새롭게 목욕해보니까 얼굴이 날씬해.
乳香尙痕於口 抱持歸養 及壯聰惠過人 是爲丞魯 位至正匡 丞魯生郞中崔肅 肅生郞中齊顔焉 自此繼嗣不絶 殷諴隨敬順王入本朝爲大姓
유향상흔어구 포지귀양 급장총혜과인 시위승노 위지정광 승노생랑중최숙 숙생랑중제안언 자차계사불절 은함수경순왕입본조위대성
젖비린내 나는 향기는 입에서 흉터가 생기니 기저귀를 챙겨야 양육을 한다. 총명함과 씩씩함으로 무장하며 지내는데 사람들은 노나라를 돕는다고 한다. 정광이 자리 잡았다. 승노가 화랑에서 최숙사이로 출생하는데 숙이 화랑과의 인연으로 화장하기가 시작하였다. 화장하기를 계사할거면 끊어내지마. 경순왕이 들어본 정권은 대씨 성을 가졌다고 은함수에서 전한다.
又統和十年三月 主寺釋性泰 跪於菩薩前 自言弟子久住玆寺 精勤香火 晝夜匪懈 然以寺無田出 香祀無繼 將移他所 故來辭爾
우통화십년삼월 주사석성태 궤어보살전 자언제자구주자사 정근향화 주야비해 연이사무전출 향사무계 장이타소 고래사이
또 통화 10년 3월에 주지 석성이 컸는데 보살전앞에서 꿇어 앉았다. 제자들에게 말하기로는 사찰에 오래 살아라는 것이다. 향기에 불이나면 상세히 근로를 하여라. 낮이건 밤이건 게으른자를 선택하여라. 그러면 사찰에서는 전출지가 없어서 제사에서 향기는 계통이 없다. 다른 공간으로 이사를 갈 것 같아서 오래동안 걸리면 말하게 하여라.
是日 假寐夢大聖謂曰 師且住無遠離 我以緣化充齋費 僧忻然感寤 遂留不行 後十三日 忽有二人 馬載牛駄 到於門前 寺僧出問 何所而來
시일 가매몽대성위왈 사차주무원리 아이연화충재비 승흔연감오 수유불행 후십삼일 홀유이인 마재우태 도어문전 사승출문 하소이래
기일이 왔다. 대성인도 꿈에서는 거짓으로 잠꼬대를 하는데 스승님도 또 주무실 곳이 없어서 멀리 떼어놓았다. 내게 있을 인연이 소비목적으로 재개하는데 충전을 하여서 꿈에서 감동하였나보다. 수유는 하지를 않았다. 후일 13일 간은 두 사람이 갑자기 등장하더니 말태우고 소태우니 문전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사찰에서 문을 나선다. 어떻게 올래??
曰 我等是金州界人 向有一比丘到我云 我住東京衆生寺久矣 欲以四事之難 緣化到此 是以歛施隣閭 得米六碩 鹽四碩 負載以來
왈 아등시금주계인 향유일비구도아운 아주동경중생사구의 욕이사사지난 연화도차 시이감시인려 득미육석 염사석 부재이래
말한다. 금주 마을 사람을 인정하여라. 비구니 1명이 존재하길래 나를 속이려고 하면서 나 역시 동경 거주자 라고 하면서 중생들은 오래동안 사찰에 산다고 하였다. 일 하는데 4번을 하니까 어렵다고 하자 인연이 되어서 흘러들어왔다고 하더니 건축 문 건설을 하고나서 얘기를 하라고 하길래 쌀 6석을 얻었지만 컸다. 짊어지고 가니까 나중에 불렀다는 것이다.
僧曰 此寺無人緣化者 爾輩恐聞之誤 其人曰 向之比丘率我輩而來
증왈 차사무인연화자 이배공문지오 기인왈 향지비구솔아배이래
일찍이 말해오는데 이번 사찰에서는 인연이 되는자가 없어서 너네는 오류를 듣고 협박할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비구를 구하려는데 나 역시도 나중에 불렸다는 것이다.
到此神見井邊曰 距寺不遠 我先往待之 我輩隨逐而來 寺僧引入法堂前 其人瞻禮大聖 相謂曰 此緣化比丘之像也
도차신견정변왈 거사불원 아선왕대지 아배수축이래 사승인입법당전 기인첨예대성 상위왈 차연화비구지상야
정변에서 귀신을 봤다고 하더니 절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멀어간다. 내게서 선왕도 기다렸다. 내 종류 역시 수축하다가 나중에 불렀다. 사찰 스님도 인입법을 따라 당으로 나간다. 그 사람들은 볼 때에는 예도만 대성인이다. 인제는 서로 말한다. 이번 연화는 비구니 형상이다.
驚嘆不已 故所納米鹽 追年不廢 又一夕寺門有火災 閭里奔救 升堂見像 不知所在 視之已立在庭中矣 問其出者誰 皆曰不知 乃知大聖靈威也
경탄불이 고소납미염 추년불폐 우일석사문유화재 려리분구 승당견상 불지소재 시지이입재정중의 문기출자수 개왈불지 내지대성령위야
놀랍고 탄식할 것은 아니다. 멈춘다. 오래동안 납품해온 쌀과 소금은 새로운 해를 맞이할수록 폐지하지 않았다. 일석사에 문은 화재가 있어서 마을 출입문으로 달려보니 괘가 당인 현상을 본 것이다. 소재를 알지 않았다. 멈추고 직립을 해보니 정중이다. 문에서 출발자는 누구냐 모두가 말하여도 알지 않았다. 대성령에 위엄 흔적이던가.
又大定十三年 癸巳間 有僧占崇 得住玆寺 不解文字 性本純粹 精勤火香 有一僧欲奪其居
우대정십삼년 계사간 유증점숭 득주자사 불해문자 성본순수 정근화향 유일승욕탈기거
대정 13년에 계사 시즌이다. 일찍이 점치기를 높였다. 사찰 거주자를 득템하여도 문자를 해독하지 않으니 본질이 순수한 성품이다. 정성으로 불내는 향기는 스님을 약탈자로 있게 하는 것이다.
訴於襯衣天使曰 玆寺所以國家祈恩奉福之所 宜選會讀文疏者主之 天使然之 欲試其人 乃倒授疏文 占崇應手披讀如流 天使服膺 退坐房中 俾之再讀 崇鉗口無言
소어친의천사왈 자사소이국가기은봉복지소 의선회독문소자주지 천사연지 욕시기인 내도수소문 점숭응수피독여유 천사복응 퇴좌방중 비지재독 숭겸구무언
천사에게 친의를 하소연해보니 자사는 국가에서 은혜를 빌어서 복을 봉양하다보니 독문이 주인과 소통하려면 마땅히 선회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천사는 그러려니 하여서 그 사람을 시험하려고 하는데 문자와 소통하는 자를 도수하는 것이다. 높이 응대를 하니 수피 읽기를 여유롭게 차지하여서 천사가 옷을 받았으니 좌석이 퇴장하는 방에서는 시킴으로 재차 읽었고 칼을 숭상하는 입에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天使曰 上人良由大聖之所護也 終不奪之 當時與崇同住者 處士金仁夫 傅諸鄕老 筆之于傳
천사왈 상인량유대성지소호야 종불탈지 당시여숭동주자 처사김인부 부제향노 필지우전
천사가 말한다. 위에서도 사람이 좋기에 인연을 둔다면 대성인 역시 보호한다. 끝내지 않으면 빼앗긴다. 때를 맞아서 주자가 높게만 살려고 하니까 선비 김인부가 살아서 모든 스승들이 시골에 있는 노인들에게 붓을 전해준 것이다.
栢栗寺
백률사
鷄林之北岳曰金剛嶺 山之陽有栢栗寺 寺有大悲之像一軀 不如作始 而靈異頗著 或云 是中國之神匠 塑衆生寺像時竝造也
계림지북악왈금강령 산지양유백률사 사유대비지상일구 불여작시 이령이파착 혹운 시중국지신장 소중생사상시병조야
계림에서 북악이 말하기를 금강령이고 산양에는 백률사가 있다고 하면서 사찰에는 대비형상을 한 곳 갖추었다고 하니 기존에 작시형태를 따르지 않았다. 신령이 아닌 것이 조금 다르게 붙었으니까 혹시 중국에 신장이 아니냐 의혹이 생겨나더니 토우 형상으로 일어난 중생사가 때 마침 조짐을 병합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諺云 此大聖曾上忉利天 還來入法堂時 所履石上脚述至今不刓 或云 救夫禮郞還來時之所視迹也
언운 차대성증상도리천 환래입법당시 소리석상각술지금불완 혹운 구부예랑환래시지소시적야
언문을 본다. 여기에서는 대성인도 일찍이 도리천 위를 돌아오려고 하였다. 부르는 입법을 맞이하는 때에는 석상이 다리를 밟고 있어서 지금 저술하기도 완전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데 부예랑을 구조하면서 돌아오다가 불림을 맞이하는 때에 흔적을 보는 것이다.
天授三年壬辰九月七日 孝昭王奉大玄薩喰之子夫禮郞爲國仙 珠履千徒 親安常尤甚 天授四年((卽)長壽 二年)癸巳暮春之月 領徒遊金蘭 到北溟之境 被狄賊所掠而去 門客皆失措而還 獨安常追迹之 是三月十一日也
천수삼년임진구월칠일 효소왕봉대현살식지자부예랑위국선 주리천도 친안상우심 천수사년((즉)장수 이년)계사모춘지월 령도유금란 도북명지경 피적적소약이거 문객개실조이환 독안상추적지 시삼월십일일야
천수 3년은 임진년이다. 9월 7일에 효소왕이 봉양하는 대현살 공물을 자부인 예량을 국선으로 하였다. 구슬 제작을 하면 1천개를 하였다. 안상에 사랑이 더욱 깊어갔다. 천수 4년(장수 2년)계사년 어느 봄 달에 령에서 금란과 놀던 날 북쪽 어둠 공간까지 갔다. 이불 빼앗는 도둑과 오랑캐가 약탈하는 걸 보고 잡혔다. 마을 출입문에서는 모든 손님이 빠져야 들어오는데 안상 혼자서 추적을 시작 한 것은 3월 11일에서야 하였다.
大王聞之 驚駭不勝曰 先君得神笛 傅于朕躬 今與玄琴藏在內庫 因何國仙忽爲賊俘 爲之奈何(琴笛事具戴別傳) 時有瑞雲覆天尊庫 王又震懼使檢之 庫內失琴笛二寶
대왕문지 경해불승왈 선군득신적 부우짐궁 금여현금장재내고 인하국선홀위적부 위지나하(금적사구대별전) 시유서운복천존고 왕우진구사검지 고내실금적이보
대왕이 듣고 아닌 식으로 말한다. 선군은 귀신에 피리를 획득하였다. 스승님 댁 방문을 한다. 현금을 주려고 하는데 감춰둔 창고를 들어가보려는데 어떤 인연으로 국선이 홀로 도둑을 잡아냈으니 난 뭐가 되냐 (금적사구대별에서 전한다) 때에 상서가 있어서 구름이 천존고를 뒤집는데 임금도 또 벼락이 두려워서 검을 봉인하고 있으니 창고에 들린 실수로 인해서 거문고 피리 보물 2개를 다시 본 것이다.
乃曰 朕何不予 昨失國仙 又亡琴笛 乃囚司庫吏金貞高等五人 四月募於國曰 得琴笛者 賞之一歲租 五月十五日 郞二親就栢栗寺大悲像前 禋祈累夕 忽香卓上得琴笛二寶 而郞常二人來到於像後 二親顚喜 問其所由來
내왈 짐하불여 작실국선 우망금적 내수사고이금정고등오인 사월모어국왈 득금적자 상지일세조 오월십오일 랑이친취백률사대비상전 인기누석 홀향탁상득금적이보 이랑상이인래도어상후 이친전희 문기소유래
또 말한다. 가짜를 준다. 앞선 날 국선에 잘못이 금적 분실에 결정타다. 죄인을 사고에 가둘 때 금정고에 공무원을 5인으로 하면서 4월 쯤 불러모아 국가일을 말한다. 금적자를 얻으면 1년 세금 면제를 할 것이다. 5월 15일에 화랑 2명이 백률사에 대비 형상에 앞서 진행을 하는데 제사로 비는데 저녁이 연했다. 갑자기 향기가 높게 솟더니 금적 보물 2개를 본 것이다. 화랑 2명은 형상 뒤에 있다. 두 사람은 꼭대기에서 웃어대더니 그런 유래를 물어보는 것이다.
郞曰 予自被掠爲彼國大都仇羅家之牧子 放牧於大烏羅尼野(一本作都仇家奴 牧於大磨之野) 忽有一僧 容儀端正 手携琴笛來慰曰 憶桑梓乎 予不覺跪于前曰 眷戀君親 何論其極
랑왈 여자피약위피국대도구라가지목자 방목어대오라니야(일본작도구가노 목어대마지야) 홀유일승 용의단정 수휴금적래위왈 억상재호 여불각궤우전왈 권련군친 하논기극
화랑이 말한다. 나 스스로 약탈을 피하려고 피국에 대도인 구라네 집에 목자로 방목할 때에 까마귀가 라국에서 스님이 들판에 계셨다 (일본 제작편 도구가노는 방목은 들판에서 칼갈기를 말한다) 갑자기 1승이 나타나더니 용의단정하게 보여서 손에 금적을 끌고와 위문하더니 뽕나무를 생각하고 가래나무라 하였다. 죄를 깨우치지 않으면서 앞서 꿇어앉으며 말하니 임금과 친해질수록 권력을 사모한다. 무슨 말 하는지 모두 했다.
僧曰 然則宜從我來 遂率至海壖 又與安常會 乃批笛爲兩分 與二人 各乘一隻 自乘其琴 泛泛歸來 俄然至此矣 於是具事馳聞 王大驚使迎 郞隨琴笛入內 施鑄金銀五器二副各重五十兩 摩衲袈裟五領 大綃三千疋 田一萬頃納於寺 用答慈庥焉
승왈 연칙의종아래 수솔지해연 우여안상회 내비적위량분 여이인 각승일척 자승기금 범범귀래 아연지차의 어시구사치문 왕대경사영 랑수금적입내 시주금은오기이부각중오십량 마납가사오령 대초삼천필 전일만경납어사 용답자휴언
스님이 말한다. 인연법에서는 마땅하게 나를 찾고 솔선을 마치면 바닷가에 가는데 또 안상이 모임을 주관하니까 피리를 조각내어 두 개로 하였다. 두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에 피리 하나씩 갖게 하니까 자승은 거문고를 타더니 귀거래사를 띄운다. 나는 그렇게 도착을 하였다. 이에 파티제작을 마쳤다고 달려와서 들으니 임금이 대경하여서 사신이 맞이하였다. 시랑은 금적을 수행하면서 안으로 들어오는데 금과 은으로 주조한 상품을 베푸는데 그릇 5개를 제작하면서 그릇이 갖는 무게를 50량으로 하였다. 가사옷 납품에 쓰이는 걸 제작하고서 오령에 간다. 대초만 3천필을 쓴다. 밭을 1만경 단위로 사찰에 납품을 하였다. 서울 용답에서는 그늘이 있어서 사랑하였다.
大赦國內 賜人爵三級 復民租三年 主寺僧移住奉聖 封郞爲大角干(羅之冢宰爵名)父大玄阿喰爲太大角干 母龍寶夫人爲沙粱部鏡井宮主 安常師爲大統 司庫五人皆免 賜爵各五級 六月十二日 有彗星孛于東方 十七日
대사국내 사인작삼급 부민조삼년 주사승이주봉성 봉랑위대각간(라지총재작명)부대현아식위태대각간 모용보부인위사량부경정궁주 안상사위대통 사고오인개면 사작각오급 육월십이일 유혜성패우동방 십칠일
나라가 대사를 벌인다. 사람이 마실 술잔을 3등급화 하였다. 3년간 세금납부하는 시즌이 온다. 주인이 사찰 스님을 이사해서 살도록 하고 성인을 봉행하는데 시랑을 봉행한 것은 대각간이다 (라국에서는 총재가 갖는 술잔 이름이다) 아빠인 대현아식을 태대각간으로 하였다. 모용보부 사람을 사량부 경정궁주로 하였고 안상은 대통령에서 스승으로 하였으니 사고 담당자 5명을 모두 파직한 것이다. 술잔을 각각 5등급으로 나뉜 것은 6월 12일이니 이 날에 혜성이 동방에서 빛을 낸다. 17일이다.
又孛于西方 日官奏曰 不封爵於琴笛之瑞 於是冊號笛爲萬萬波波息 彗乃滅 後多靈異 文煩不戴 世謂安常爲俊永郞徒 不之審也 永郞之徒 唯眞才 繁完等知名 皆亦不測人也 (詳見別傅)
우패우서방 일관주왈 불봉작어금적지서 어시책호적위만만파파식 혜내멸 후다령이 문번불대 세위안상위준영랑도 불지심야 영랑지도 유진재 번완등지명 개역불측인야 (상견별부)
또 혜성이 서방으로 간다. 일관이 상소를 한다. 술잔을 봉인하지 않아서 금적이 갖는 조짐이 피리악보를 호명하는데 만파식을 만만파파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혜성은 소멸하였다. 후일에 많은 신령이 달라지면서 문자가 괴롭지 않으면 머리에 인다. 세상에서는 안상을 가리켜 영랑도에서 준걸 취급을 한다. 심사하지를 말아라. 영랑지도는 진실 속 재능이라고 하여도 완성할수록 많아지는 지식이 갖는 명칭이니 모두가 아니라는데 사람을 측량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세하게 볼 것이라면 스승님을 나눠라)
敏藏寺
민장사
총명한 장사.
禺金里貧女寶開 有子名長春 從海賈而征 久無音耗 其母就敏藏寺(寺乃敏藏角干捨家爲寺)觀音前 克祈七日 而長春忽至 問其由緖
우금리빈여보개 유자명장춘 종해가이정 구무음모 기모취민장사(사내민장각간사가위사)관음전 극기칠일 이장춘홀지 문기유서
우금리에 가난한 여자가 보물을 열었다. 아들을 건지고 장춘이라 하였다. 바다를 쫓다가 가치를 채운다. 오래동안 층간소음 줄기가 없다. 엄마가 민장사에 가던 날에는 (사찰에서 민장은 각간이 집을 버리고 사찰이라 하였다) 관음전에서 7일 기도를 이겨내면서 장춘을 잊은 것이다. 잊어진 장춘 이야기를 물어본다.
曰 海中風飄舶壞 同侶皆不免 予乘隻板歸泊吳涯 吳人收之 俾耕于野 有異僧如鄕里來 弔慰勤勤 率我同行 前有深渠 僧掖我跳之 昏昏間如聞鄕音與哭泣之聲 見之乃已屆此矣
왈 해중풍표박괴 동려개불면 여승척판귀박오애 오인수지 비경우야 유리승여향리래 조위근근 솔아동행 전유심거 승액아도지 혼혼간여문향음여곡읍지성 견지내이계차의
말한다. 해풍이 회오리를 동반하면서 상선을 파괴하고 벗과 함께 해 온 모두는 사면하지 않았으니 목선에 승선을 하는 나는 돌아가는 길에 정박지를 오에서 도선하였다. 오나라 사람이 수습하였다. 들에가서 밭갈기를 하는 날 다른 스님이 있어서 향리로 따라 오더니 조상을 위로하는데 부지런하였다. 나를 챙겨주는 자와 동행을 하고서 앞날에 깊은 도랑이 있길래 스님이 액땜으로 뛰는 것이다. 어두운 틈에 시골소리를 듣기에 따라보니 울음을 내는 우는 소리다. 보던 날 사연을 들을까 멈출까 하는 사이에 여기로 온 것이다.
日晡時離吳 至此纔戌初 卽天寶四年乙酉四月八日也 景德王聞之 施田於寺 又納財幣焉
일포시리오 지차재술초 즉천보사년을유사월팔일야 경덕왕문지 시전어사 우납재폐언
어느 날 포시가 되자 오나라를 떼낸다. 술시에 방금 완성하였다. 천보 4년은 을유년이다. 을유년 4월 8일이다. 경덕왕이 듣는다. 밭을 베풀어서 사찰로 하였고 또 돈과 비단을 납품하였으니 민장사에 있다.
前後所將舍利
전후소장사리
진신사리 소장하기는 앞서거나 뒤떨어지거나
國使云 眞興王大淸三年己巳 梁使沈湖送舍利若干粒 善德王代貞觀十七年癸卯 慈藏法師所將佛頭骨 佛牙 佛舍利百粒 佛所著緋羅金點袈裟一領 其舍利分爲三 一分在皇龍塔 一分在太和塔 一分竝袈裟在通度寺戒壇 其餘未詳所在 壇有二級 上級之中 安石蓋如覆鑊
국사운 진흥왕대청삼년기사 양사심호송사리약간입 선덕왕대정관십칠년계묘 자장법사소장불두골 불아 불사리백입 불소착비라금점가사일령 기사리분위삼 일분재황룡탑 일분재태화탑 일분병가사재통도사계단 기여미상소재 단유이급 상급지중 안석개여복확
신라사를 본다. 진흥왕 대청 3년 기사년일이다. 양나라 사신 심호송이 사리를 어느 정도 반입하였다. 선덕왕 대정 17년 계묘년을 본다. 자장법사가 부처님 두골을 소장하였다. 부처님 이빨과 부처님 사리를 쌀 조각화 하였다. 부처는 붉은 빛이 분명하여서 승려 옷을 금으로 점친 흔적으로 옷깃에 둔다. 사리를 나누어 3등분 하였다. 하나를 나눈 것은 황룡사 탑에 있고 또 하나는 태화 탑에 있고 하나에서 나뉘어 승려 옷과 함께 통도사 계단에 둔 것이다. 남아 있는 소재는 미상 상태다. 단에도 등급이 2개다. 윗 등급에 머물면 돌로 덮히니까 가마가 뒤집히는 꼴이다.
諺云 昔在本朝 相次有二廉使 禮壇擧石鑊而敬之 前感脩蟒在函中 後見巨蟾蹲石腹 自此不敢擧之 近有上將軍金公利生
언운 석재본조 상차유이렴사 예단거석확이경지 전감수망재함중 후견거섬준석복 자차불감거지 근유상장김금공이생
언문을 본다. 예전에도 있을 라국 조정은 다음을 보는데 사신에게는 청렴함이 2번 가지라는 것이니 예절로 계단을 들어서 돌로 제작한 가마를 공경하기다. 앞날에 수망이 함중에 존재하게 하였고 훗날에 보기를 두꺼비를 모아서 거친 배를 돌로 가르라 하였고 스스로 감동하지가 않거든 움직였으니 가깝게는 상장군 김유신이 이득을 실현하고 있음이다.
庾侍郞碩 以高廟朝受旨 指揮江東 仗節到寺 擬欲擧石瞻禮 寺僧以往事難之 二公令軍士固擧之 內有小石函 函襲之中 貯以瑠璃筒 筒中舍利只四粒 傳示瞻敬 筒有小傷裂處 於是庾公適蓄一水精函子 遂奉施兼藏焉 識之以記 移御江都四年乙未歲也
유시랑석 이고묘조수지 지휘강동 장절도사 의욕거석첨예 사승이왕사난지 이공령군사고거지 내유소석함 함습지중 저이류리통 통중사리지사입 전시첨경 통유소상열처 어시유공적축일수정함자 수봉시겸장언 식지이기 이어강도사년을미세야
김유신은 시랑으로 가득 채웠다. 고묘에서부터 조정에게 복지를 수여받아서 강동을 지휘하는데 절도사를 하더니 의지로 돌을 들어 보이는 것이다. 예절로는 사찰 스님이 갈 때마다 일하기가 어렵다고 하여서 절도사에게는 공령이 2공령이라 군사들에게서 사기가 고무되었다. 소석함이 있어 들이니 함에는 습기가 존재하여서 술잔을 유리로 저축하였다. 유리잔이 있는 사리에서는 쌀알 4톨로 담아두고 전달하고서 보니 보는 것 자체가 공경이다. 술잔에는 작은 상처가 찢어져 있었다. 이에 김유신 공로를 적재하고 저축하니 수분으로 상자를 채우고 봉양하고 베풀기를 수행하다가 겸직을 한 채로 숨겨둔 것이 여기라는 것이다. 알거든 기록하여라. 이사를 하고 길들인 강동 도읍지에는 4년으로 을미년 세상이다.
古記稱 百枚分藏三處 今唯四爾 旣隱現隨人 多小不足怪也
고기칭 백매분장삼처 금유사이 기은현수인 다소불족괴야
옛 기록에서 구칭을 하는데 줄기 100개를 나누어 3곳에 감춰서 살면은 지금은 4이 되는 건 너가 채운 것이다. 숨겨둔 게 나타날수록 사람이 따라 붙는 현상은 많건 적건 부족에서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又顔云 其皇龍寺塔災之日 石鑊之東面始有大班 至今猶然 卽大遼應曆三年癸丑歲也 本朝光廟五戴也 塔之第三災也
우안운 기황룡사탑재지일 석확지동면시유대반 지금유연 즉대요응력삼년계축세야 본조광묘오대야 탑지제삼재야
또 얼굴보기다. 황룡사에 탑은 재앙을 만난 날엔 돌로 제작한 가마가 겨울나기 하던 때에 처음 대반을 하였다. 인제는 오히려 그러하다. 곧 큰 요역에 존재하는 시간인 응력 3년은 계축년 세상이다. 라국 근본을 뵙는 빛은 사당 5곳에서 생각을 한다.
曹溪無衣子留詩云 聞道皇龍災塔日 連燒一面示無間 是也 自至元甲子已來 大朝使佐 本國皇華 爭來瞻禮 四方雲水 輻湊來參 或擧 不擧 眞身四枚外 變身舍利 碎如砂礫 現於력外 而異香郁烈 彌日不歇者 比比有之 此末季一方之奇事也
조계무의자류시운 문도황룡재탑일 연소일면시무간 시야 자지원갑자이래 대조사좌 본국황화 쟁래첨예 사방운수 폭주래참 혹거 불거 진신사매외 변신사리 쇄여사력 현어력외 이리향욱렬 미일불헐자 비비유지 차말계일방지기사야
조계사에 옷이 없던 날 아들을 맡기며 시경을 읊는다. 황룡사에 재앙을 겪은 탑이 인위적이라는 날을 듣고 연속으로 소각하는 공무원이 안 보일 정도니 인정하여라. 스스로 으뜸이라는 갑자년이 오더니 사신도 도움으로써 뵙더니 신라국을 임금만 중화하려고 하였다. 쟁점에 불러본 예절은 사방에 이슬이 맺혀서 트럭이 항구로 모여들자 섞인다. 가던지 안 가던지. 진신은 밖에서 4방면으로 매듭을 묶자 몸으로 변하였다. 사리는 쇄석을 하니까 모래와 조약돌 같았다. 현미경 미세조정하기를 넘었다. 묶어둔 진신에서 시체썩는 냄새가 진해지자 오래동안 날이 아니었다. 휴식하는 자가 비밀을 모방하고 있다. 신라국 말년에 생겨난 기사다.
唐大中五年辛未 入朝使元弘所將佛牙 (今未詳所在 新羅文聖王代) 後唐同光元年癸未 本朝太祖卽位六年 入朝使尹質所將五百羅漢像 今在北崇山神光寺 大宋宣和元年己卯(睿廟十五年) 入貢使鄭克永 李之美等所將佛牙 今內殿置奉者是也
당대중오년신미 입조사원홍소장불아 (금미상소재 신라문성왕대) 후당동광원년계미 본조태조즉위육년 입조사윤질소장오백나한상 금재북숭산신광사 대송선화원년기묘(예묘십오년) 입공사정극영 이지미등소장불아 금내전치봉자시야
당나라 대중 5년은 신미년이다. 사신은 알현을 들어서 원홍사 소재 부처 어금니가 소실하였다. (소재지는 미상이다. 신라국 문성왕대다) 후일에 당나라 동광시절 원년은 계미년이다. 고려국 태조 왕건이 즉위한 6년에 사신 윤질이 알현에 들었는데 5백나한을 상형을 하고서 지금 북숭산에 신광사로 가 있으니 대송나라 선화 원년은 기묘년이다 (사당에서는 15년이다) 사신이 공물바치려고 정나라를 뚫고 길게도 왔는데 이지미가 부처어금니에 등급을 매기고는 금내전에 두고서 봉려하는 자를 인정하였다.
相傳云 昔義湘法師入唐 到終南山至相寺智儼尊者處 隣有宣律師 常受天供 每齊時天廚送食 一日律師請湘公齋 湘至坐定旣久 天供過時不至 湘乃空鉢而歸 天使乃至 律師問今日何故遲
상전운 석의상법사입당 도종남산지상사지엄존자처 린유선율사 상수천공 매제시천주송식 일일율사청상공재 상지좌정기구 천공과시불지 상내공발이귀 천사내지 율사문금일하고지
조계사와 신광사 소식을 전한다. 오래 전 의상법사가 당나라에 들더니 남산에서 종결 맺고자 지장사에서 지혜로 엄존하게 살고 있는데 이웃 선율 사수가 항상 천공을 받고 있길래 언제나 제시면 천주에게로 밥을 보낸다. 하루는 율사가 요청하기를 상 지역에서 공직을 재개하자고 하였다. 상 지역에서는 좌석 지정을 마친 지 오래다. 하늘은 공손을 과시하면 멈추지 않아서 상 지역에서 바리때가 소멸하여야 귀가를 하는데 천사가 내려오더니 율사는 금일에 질문한 것에 대해 늦은 이유를 밝혀라는 것이다.
天使曰 滿洞有神兵遮擁 不能得入 於是律師知湘公有神衛 乃服其道勝 仍留其供具 翌日又邀儼湘二師齋 具陳其由
천사왈 만동유신병차옹 불능득입 어시율사지상공유신위 내복기도승 잉유기공구 익일우요엄상이사재 구진기유
천사가 말한다. 만동에서는 귀신병사가 있어서 막는다. 안을수록 득템을 잘하지 못한다. 이에 율사는 상지역에서 알던 공직으로 귀신을 지키니 좋은 옷을 입고서 거듭 머물러야만 공손히 갖춘 것이라는 것이다. 다음 날 요에서는 상 지역에서 스승 2명이 좋아서 재개하였다. 진나라가 갖춰둔 인연에서다.
湘公從容謂宣曰 師旣被天帝所敬 嘗聞帝釋宮有佛四十齒之一牙 爲我等輩請下人間 爲福如何 律師後與天使傳其意於上帝 帝限七日送與 湘公致敬訖 邀安大內 後至大宋徽宗朝 崇奉左道 時國人傳圖讖曰 金人敗國 黃巾之徒 諷日官
상공종용위선왈 사기피천제소경 상문제석궁유불사십치지일아 위아등배청하인간 위복여하 율사후여천사전기의어상제 제한칠일송여 상공치경흘 요안대내 후지대송휘종조 숭봉좌도 시국인전도참왈 금인패국 황건지도 풍일관
상 지역에서 공적있는 위선이 종용을 말하는데 스승은 이미 천제를 피하였다. 공경을 남기시는데 제석궁에서 일찍이 시험을 받아서 부처 이빨 40개를 어금니 하나회 하고 있다. 나는 등급을 요청하면서부터 아래 사람들에게는 뭔 복을 끼우는 거냐 하였다. 율사는 후일에 천사를 주더니 그 뜻을 상제에게 전달하였고, 임금도 소요시일 7일간 보내셨으니 상 지역에 공적을 보내어 공경하기를 마친 것이다. 요 지역에서는 안전을 대내하였고 후일에 송나라 휘종 조정에서는 좌도를 숭유로 봉양하였으니 때에 나라 사람이 도참을 말하는 것이다. 금나라 사람이 깨뜨린 나라에서 황건적 따라하기는 공무원을 간찍는 것이다.
奏曰 金人者佛敎之謂也 將不利於國家 議將破滅釋氏 坑諸沙門 焚燒經典 而別造小舡 戴佛牙泛於大海 任隨緣流泊 于時適有本朝使者至宋 聞其事 以天花茸五十領 紵布三百疋 行賂於押舡內史 密授佛牙 但流空舡 使臣等旣得佛牙來奏
주왈 금인자불교지위야 장불이어국가 의장파멸석씨 갱제사문 분소경전 이별조소강 대불아범어대해 임수연유박 우시적유본조사자지송 문기사 이천화용오십령 저포삼백필 행뇌어압강내사 밀수불아 단유공강 사신등기득불아래주
주문을 한다. 금나라 사람에게선 부처에 가르침이라 한다. 국가에서는 이익실현이 아니다. 석씨 파멸에 대해 의논을 해보자. 여러 사문들을 구덩이에 뭍히고 경전을 소각하고 조소강을 합쳐보니까 부처님편 어금니가 대해에서 뜨다가 인다. 임대를 한 대로 수행을 하니까 인연을 따라 정박을 마친다. 때에 목적지는 신라국 조정에서 송나라로 가는 배편이다. 사실이냐고 물어보니 천화용이 50발 하여서 저포 3백필로 구매를 하는데 압록강변 내사에게 뇌물을 주니까 부처님 어금니라 하며 건네더라. 압록에서는 소멸이 유행타더니 사신들이 등기로 부쳐주면서 부처님편 어금니로 거래를 하는 것이다.
於是睿宗大喜 奉安于十員殿左掖小殿 常鑰匙殿門 施香燈于外 每親幸日 開殿瞻敬 至壬辰歲移御次 內官悤遽中 忘不收檢 至丙申四月 御願堂神孝寺釋蘊光請致敬佛牙 聞于上 勅令內臣遍檢宮中 無得也
어시예종대희 봉안우십원전좌액소전 상약시전문 시향등우외 매친행일 개전첨경 지임진세이어차 내관총거중 망불수검 지병신사월 어원당신효사석온광청치경불아 문우상 칙령내신편검궁중 무득야
고려 예종은 크게 기뻐서 봉인하더니 안에게 가서 10원으로 전좌를 하고 겨드랑이에 가서 소전을 하니까 항상 손가락에 자물쇠를 걸었다. 등잔에서 향기내기를 밖에서 하기를 행일 일수록 언제나 그랬다. 큰집을 개방하고 공경하도록 보고나니까 임진년에 어차를 옮겼는데 지혜로운 공무원이 급하게 서두른다. 잊지 않으려고 검을 거둔 것이다. 병신년 4월이 되자 집에서 신효사 길들이는게 소원이던지 온광을 풀도록 빛으로 요청하기를 부처 어금니에게로 보내라 하는 것이다. 위에서 들으시고는 칙령으로써 내신에게 명령을 하니 검 역시 궁중에서도 채워라는 것인데 실현함이 없었다.
時栢臺侍御史崔沖命薛伸 急徵于諸謁者房 皆未知所措 內臣金承老奏曰 壬辰年移御時紫門日記推看 從之
시백대시어사최충명설신 급징우제알자방 개미지소조 내신김승노주왈 임진년이어시자문일기추간 종지
때에 백대시어사 최충은 설신에게 명령을 내린다. 급하게 불렀으니 모든 방마다 알현하는 것들은 모두가 알지 못할 쯤 파직을 시킬 것이다. 내신 김승노가 상소하는데 임진년에 이어서 자문일기를 추정하여 보아라 하였다. 따랐다.
記云 入內侍大府卿李白全受佛牙函云 召李詰之 對曰請歸家更尋私記 到家檢看 得左番謁者金瑞龍佛牙函准受記來呈 召問瑞龍 無辭以對
기운 입내시대부경이백전수불아함운 소이힐지 대왈청귀가갱심사기 도가검간 득좌번알자금서룡불아함준수기래정 소문서룡 무사이대
자문일기다. 반입을 실행한 내시는 대부경으로 이백 전권을 받은 불경 아함경을 보았다. 이씨를 불러서 따져라. 대답을 하니 귀가를 요청하는 것이다. 다시 사기를 찾았다. 집집마다 검채우고 있는 것을 보니까 번거롭게 좌반에서 알현하는 자인 금서룡은 부처 어금니를 함에 넣기를 승인받아서 수기를 기록하여서 드린 인물인데 금서룡을 불러다 들어보니까 말하기도 없는데 대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又以金承老所奏云 壬辰至今丙申 五年間 御佛堂及景靈殿上守等囚禁問當 依違未決 隔三日 夜中 瑞龍家園墻裏 有投擲物聲 以火檢看 乃佛牙函也
우이김승노소주운 임진지금병신 오년간 어불당급경령전상수등수금문당 의위미결 격삼일 야중 서룡가원장리 유투척물성 이화검간 내불아함야
또 김승노에서 상소를 보니까 임진년에서 병신년 사이는 5년이다. 불당 길들이기 전략은 경령전 위에서 지키는 것인데 등급이 죄인들이 금문당에서는 미결사건은 어겨라고 하면서 의지한다는 것이다. 3일을 간격 둔 어느 밤에는 서룡에 집이 원장리라서 만물을 투척하는 소리가 있대서 검을 채우고 불을 보려는 때에 부처 어금니가 담긴 함이 들렸다는 것이다.
函本內一重沈香合 次重純金合 次外重白銀函 次外重瑠璃函 次外重螺鈿函 各幅子如之 今但瑠璃函爾 喜得之 入達于內 有司議 金瑞龍及兩殿上守皆誅
함본내일중심향합 차중순금합 차외중백은함 차외중류리함 차외중나전함 각폭자여지 금단류리함이 희득지 입달우내 유사의 금서룡급량전상수개주
함에서 첫 째는 깊은 무거움에서 우러나는 향기 합치기다. 다음 무겁기로는 순금합치기다. 다음 밖으로는 백은을 무겁게 하여 함 제작하기다. 다음으로는 무거운 유리로 유리함을 제작하기다. 다음으로는 무거운 껍질로 비녀채우는 함이다. 각각의 함에서 넓이 설정은 남자를 기준으로 하였는데 지금 쓸데없는 유리 파편으로 제작한 함이 너라는 것이니 기쁘게 실현을 하고 들어가는 것을 달성하니 공무원 하기를 의논하는 꼴이다. 금서룡은 량전 위에서 미치니까 모든 것을 사살하기로 맘 굳혔다.
晋陽府奏云 因佛事 不合多傷人 皆免之 更勅十員殿中庭 特造佛牙殿安之 令將士守之 擇吉日 請神孝寺上房蘊光 領徒三十人 入內設齋敬之 其日入置承宣崔弘 上將軍崔公衍 李令長 內侍 茶房等 侍立于殿庭 依次頂戴敬之 佛牙區穴間 舍利不如數 晋陽府以白銀合貯而安之
진양부주운 인불사 불합다상인 개면지 갱칙십원전중정 특조불아전안지 령장사수지 택길일 청신효사상방온광 령도삼십인 입내설재경지 기일입치승선최홍 상장군최공연 이령장 내시 차방등 시입우전정 의차정대경지 불아구혈간 사리불여수 진양부이백은합저이안지
진양부에서 상소를 한다. 불사에 인연을 두면은 많은 상처가 합쳐지면서 사람이 아니다. 모두가 사면자다. 다시 10원을 파는 전중정에서는 특별히 조직한 불아전을 안전하게 하는데 불령이 장사에게 수비하라는 것이다. 길일을 선택하였다. 신효사에 요청으로 방온광을 내리니 팔관승지회원 30여명은 입장을 하고 설재를 공경하는 것이다. 방문을 승인한 치승선 해 준 자는 최홍과 상장군 최공연 이령장 내시 차방으로 전정에서 시중 들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정대경에게 의지할 것이라고 하더니 부처 어금니가 있는 공간에 구멍이 났다. 사리도 아닌데 분실하여 개수 세고 있었다. 진양부에서 백은을 합치고 나서야 저축을 해도 안전보장이 쉽지 않았다.
時主上謂臣下曰 朕自亡佛牙已來 自生四疑 一疑 天宮七日限滿而上天矣 二疑 國亂如此 牙旣神物 且移有緣無事之邦矣 三疑 貪財小人 盜取函幅 弃之溝壑矣 四疑 盜取珍利 而無計自露 匿藏家中矣 今第四疑當之矣
시주상위신하왈 짐자망불아이래 자생사의 일의 천궁칠일한만이상천의 이의 국란여차 아기신물 차이유연무사지방의 삼의 탐재소인 도취함폭 기지구학의 사의 도취진리 이무계자로 닉장가중의 금제사의당지의
때에 주상이 신하들에게 말한다. 부처 어금니는 스스로 망하였다는 줄 모르고 올 것이다. 사의가 생겨났으니 1의는 천궁은 7일을 경계로 채워져도 상천으로 봐야 하는 것이고, 2의는 국가 재난이 이러한데 어금니로 제작한 귀신 만물도 또 인연이 있으면 이사를 갈 것이니 일이 없어야만 국가유지를 하냐는 것이고, 3의는 소인은 재물을 탐내니까 도둑이 함폭을 취합하는데 도랑과 골짜기를 버린다는 것이고, 4의는 도둑이 진리를 취합하고 전략이 통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이슬맺히니까 장식품으로 집에 숨겨둔다는 것이다. 인제 4번째를 의심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乃放聲大哭 滿庭皆洒涕 獻壽至有煉頂燒臂者 不可勝計 得此實錄於當時內殿焚修前祗林寺大禪師覺猷 言親所眼見 使予錄之
내방성대곡 만정개쇄체 헌수지유련정소비자 불가승계 득차실녹어당시내전분수전지림사대선사각유 언친소안견 사여녹지
방성대곡이란 뜰을 채우는 모든 분비물이다. 생명을 봉헌하여라. 머리카락 태우는데 팔을 쓸 것이라면 전승전략일 정도는 아니다. 실제로 재현하기를 그 시절에 기록에서는 내전이 불태우면서 수행하기를 지림사에서 하던 것처럼 대선사가 하더니 깨달음 모형이 있었다. 말이 친분이 있어서 눈으로 보고나자 사신이 여식에게 기록을 증명한 것이다.
又至庚午出都之亂 顚沛之甚 過於壬辰 十員殿監主禪師心鑑 亡身佩持 獲免於賊難 達於大內 大賞其功 移授名刹 今住永山寺 是亦親聞於彼 眞興王代天嘉六年乙酉 陳使劉思與釋明觀 戴送佛經論一千七百餘卷
우지경오출도지난 전패지심 과어임진 십원전감주선사심감 망신패지 획면어적난 달어대내 대상기공 이수명찰 금주영산사 시역친문어피 진흥왕대천가육년을유 진사류사여석명관 대송불경논일천칠백여권
경오년에 도읍이 출발하던 때 난동이 패배할 것이라는 징조가 심하였다. 임진년을 지나치자 10원은 전감주 선사가 마음으로 거울을 보았으니 몸이 패배한다는 것이 망하자 가짐이 생겨났다. 획득에서 사면이란 도둑이 가질 어려움이다. 대내에 도달을 하고 공로에는 상으로 크게 맞춰보니 명찰 수여자가 이사하였다. 지금에 영산사다. 영산사 소식을 듣고나니 진흥왕대에 천가 6년인 을유년이다. 진사 류사여가 명관을 해석하면서 불경 게송과 논어 1700여권 배송하기를 생각하였다.
貞觀十七年 慈藏法師戴三藏四百餘函來 安于通度寺 興德王代大和元年丁未 入學僧高麗釋丘德 䝴佛經若干函來 王與諸寺僧徒 出迎于興輪寺前路
정관십칠년 자장법사대삼장사백여함래 안우통도사 흥덕왕대대화원년정미 입학승고려석구덕 재불경약간함래 왕여제사승도 출영우흥륜사전로
정관 17년에 자장법사가 3장 속 4백여 함을 가져오기를 생각하고서 안전하게 통도사행을 하는데 흥덕왕 시절에 대화 원년인 정미년일이다. 학승 고구려인 석구덕이 입학을 하면서 불경과 약간에 함을 챙겨오더니 임금도 여러 사승무리를 붙여주니까 흥륜사 앞길로 출발하여 맞이하였다.
大中五年 入朝使元弘 䝴佛經若干軸來 羅末普耀禪師再至吳越 載大藏經來 卽海龍王寺開山祖也 大宋元祐甲戌
대중오년 입조사원홍 재불경약간축래 라말보요선사재지오월 재대장경래 즉해룡왕사개산조야 대송원우갑술
대중 5년에 조사 원홍이 입지하였다. 불경과 약간에 종이를 챙겼으니 신라국 말년에 보요선사가 오나라 월나라에서 넘어오면서 대장경을 챙겨 오셨으니 해룡왕사를 조상 산으로 승산하였다. 이 때가 대송 원우 갑술년이다.
有人眞讚云 偉哉初祖 巍乎眞容 再至吳越 大藏成功 賜銜普耀 鳳詔四封 若問其德 白月淸風 又大定中 漢南管記彭祖逖留詩云 水雲蘭若住空王 況是神龍穩一場 畢竟名藍誰得似 初傳像敎自南方
유인진찬운 위재초조 외호진용 재지오월 대장성공 사함보요 봉조사봉 약문기덕 백월청풍 우대정중 한남관기팽조적유시운 수운난약주공왕 황시신룡온일장 필경명람수득사 초전상교자남방
사람이 진실로 칭찬을 한다. 위나라 조상은 높은 진용이다. 오월에서 방문길을 마치고 감추기를 성공하였으니 함을 선물하면서 보요를 맞이하라고 하였다. 봉추는 조사에게서 봉인을 하는데 덕을 듣는다는 것은 흰 달이 불어오는 미풍이라는 것이다. 또 정중이 크더니 한남관기를 본다. 팽 지역에서 조적이 머문 흔적을 시경에서 띄운다. 난초가 수운을 맺히면 거지왕이 사는 것과 같고, 황건적이 신룡을 인정할 것이라면 시험장이 언제나 평온하다는 것이니 필경이란 답안지에서 정답을 표시하는 자 누군가? 처음 전하는 모형은 문제 아래인 남쪽을 가리킨다.
有跋云 昔普耀禪師始求大藏於南越 洎旋返次 海風忽起 扁舟出沒於波間
유발운 석보요선사시구대장어남월 계선반차 해풍홀기 편주출몰어파간
문제풀고 있다. 예전 보요선사는 남월에서 대장하기를 구조하였는데 계 지역에서 선반은 바다 바람은 갑자기 일어난다고 하여서 편옥선이 출몰한다는 공간이 파도 사이 인가요??
師卽言曰 意者神龍欲留經耶 遂呪願乃誠 兼奉龍歸焉 於是風靜波息 旣得還國 遍賞山川 求可以安邀處 至此山 忽見瑞雲起於山上 乃與高弟弘慶 經營蓮社 然則像敎之東漸 實始乎此 漢南管記彭祖逖 題 寺有龍王堂 頗多靈異 乃當時隨經而來止者也
사즉언왈 의자신룡욕류경야 수주원내성 겸봉룡귀언 어시풍정파식 기득환국 편상산천 구가이안요처 지차산 홀견서운기어산상 내여고제홍경 경영련사 연칙상교지동점 실시호차 한남관기팽조적 제 사유용왕당 파다령이 내당시수경이래지자야
스승이 대답하는데 신룡도 생각있을 것이라면 경학에 체류하면서 주문을 수행하는 소원도 정성이 깃 들어야 룡이 봉행하면서 겸직을 통해서 귀가를 한다. 이에 고요한 바람에 호흡하는 파도를 헤쳐나갈 때 국가 교환을 실현할 것 같다면 산천 소재지 골고루 상줘야 하는데 요에 살아서 안전을 구조할 정도라는 것이다. 산이 멈추자 갑자기 운기가 경사스럽게 산 위에 펼쳐지는데 고제홍이 경사를 전하는 것이다. 사직을 경영하는데 종자돈이 차츰 동쪽에 치우쳐진 가르침을 주는 꼴이라서 처음 현상이다. 한남관기에서 전하는 팽 마을 조적은 신문 기사 거리다. 사찰에서는 용왕당을 모시니 미치게도 많을 신령이지만 다르다. 때에 수경주가 유행을 타지만 오면 얼음이다.
至今猶存 又天成三年戊子 黙和尙入唐 亦載大藏經來 本朝睿廟時 慧照國師奉詔西學 市遼本大藏三部而來 一本今在定惠寺(海印寺有一本 許參政宅有一本)
지금유존 우천성삼년무자 묵화상입당 역재대장경래 본조예묘시 혜조국사봉조서학 시요본대장삼부이래 일본금재정혜사(해인사유일본 허참정택유일본)
지금도 존재한다. 천성 3년은 무자년이다. 묵화상이 당나라 행 한다. 대장경 운반책을 숨겼다. 사당 제작에 조예를 두었다. 혜조국사가 봉인한 조서에서는 학교 준칙주의가 요 지역에서는 대장경을 3부로 제작하기로 하였다. 일본에서는 오늘날 정혜사가 그러하다 (해인사에 일본이 전하는데 도참설을 허락한 정택 역시 일본을 갖고 있다)
大安二年 本朝宣宗代 祐世僧統義天入宋 多將天台敎觀而來 此外方冊所不載 高僧信士 往來所䝴 不可詳記 大敎東漸 洋洋乎慶矣哉
대안이년 본조선종대 우세승통의천입송 다장천태교관이래 차외방책소불재 고승신사 왕래소재 불가상기 대교동점 양양호경의재
대안 2년은 고려국 선종임금 시대로 승통에선 의천대사가 송나라에 입국하던 때다. 천태교를 관람할 목적을 둔 이래로 송나라 주변국가는 서적을 기록하지 않았으니 오래동안 스님과 선비를 믿어온 불신이 소재지를 파악하게 한 것이다. 상세한 기록은 가능하지 않아서 천태종이 동쪽을 차지한다는 것은 강과 바다를 건너야 하는 경사인 것이다.
讚曰 華月夷風尙隔烟 鹿園鶴樹二千年 流傳海外眞堪賀 東震西乾共一天 按此錄
찬왈 화월이풍상격연 녹원학수이천년 유전해외진감하 동진서건공일천 안차녹
편찬하였다. 중국은 달이요 동이는 바람이니 연기 발생하면 벌어진다. 사슴이 다니는 동산에 학나무는 2천년이다. 유전 역시 해외에서는 진실로 고통을 견뎌야만 하례를 한다. 동쪽에서 벼락이 서쪽 하늘로 퍼져나가니 일천 공간에서 함께한다. 기록을 당겼다.
義湘傳云 永徽初 入唐謁智儼 然據浮石本碑 湘 武德八年生 丱歲出家 永徽元年庚戌 與元曉同伴欲西入 至高麗 有難而廻 至龍朔元年辛酉 入唐 就學於智儼
의상전운 영휘초 입당알지엄 연거부석본비 상 무덕팔년생 관세출가 영휘원년경술 여원효동반욕서입 지고려 유난이회 지룡삭원년신유 입당 취학어지엄
의상대사가 소식을 전한다. 영휘도 처음엔 당나라에 가더니 지엄을 알현하였다. 인연있는 증거물로는 부석사에 소장하고 있는 비석을 보아라. 상에서는 무덕년 8년에 출생하면서 총각 시절에 출가를 하였다. 영휘에서 원년은 경술년이다. 원효대사와 서학을 배우려고 동반하였다. 고구려시대를 맞이하자 어려움이 있을수록 돌아버렸다. 룡삭 원년인 신유년을 맞이하자 당나라에 들어갔고 지엄을 배우기에 뜻을 낸다.
總章元年 儼遷化 咸亨二年 湘來還新羅 長安二年壬寅示滅 年七十八 則疑與儼公齋於宣律師處 請天宮佛牙 在辛酉至戊辰七八年間也
총장원년 엄천화 함형이년 상래환신라 장안이년임인시멸 년칠십팔 칙의여엄공재어선율사처 청천궁불아 재신유지무진칠팔년간야
총장 원년을 맞이한다. 화엄이 옮기고서 되었다. 함형 2년이다. 상 지역에서는 신라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장안 2년인 임인년에 멸망하는 것을 보인 것이다. 17년이다. 의심스러운 법도 화엄경이 갖는 공적을 재개한다는 데에서는 선율사에 살고 있었는데 천궁에 부처 어금니가 요청하였다. 신유년에 있다가 무진년 7년 8년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本朝高廟入江都壬辰年 疑天宮七日限滿者 誤矣
본조고묘입강도임진년 의천궁칠일한만자 오의
본 정부에서 고묘가 강도에 들었다. 임진년에는 천궁을 의심하더니 7일간을 한계로 채워졌다는 것은 오류다.
忉利天一日夜 當人間一百歲 且從湘公初入唐辛酉 計至高廟壬辰 六百九十三歲也 至庚子年 始滿七百年 而七日限已滿矣
도이천일일야 당인간일백세 차종상공초입당신유 계지고묘임진 육백구십삼세야 지경자년 시만칠백년 이칠일한이만의
근심 가득한 이득은 하늘에서 어느 밤이다. 인간이면 1백년이 수명이다. 또 상지역 공로를 쫓아서 당나라로 들어간 것은 신유년이다. 계획에서는 임진년으로 잡았으니 693년이라는 것이다. 이에 맞이 한 경자년은 처음 1만7백년에서 7일을 분실하여야 채워진다는 건 뭔 논리인가.
至出都至元七年庚午 則七百三十年 若如天言 而七日後還天宮 則禪師心鑑出都時 佩持出獻者 恐非眞佛牙也
지출도지원칠년경오 칙칠백삼십년 약여천언 이칠일후환천궁 칙선사심감출도시 패지출헌자 공비진불아야
도읍이 출마를 한지 으뜸으로 7년을 지난 경오년은 730년이다. 만약에 하늘에 말을 따를 것 같다면 7일 이후에는 천궁으로 되돌아 온다. 선사가 갖는 마음 거울은 도읍에서 출발을 하는 때이니 출헌자가 채워진 것을 갖는다면 공포가 아니고서야 진짜 부처님 어금니라는 것이다.
於是年春出都前 於大內集諸宗名德 乞佛牙舍利 精勤雖切 而不得一枚 則七日限滿 上天者幾矣
어시년춘출도전 어대내집제종명덕 걸불아사리 정근수절 이불득일매 칙칠일한만 상천자기의
이에 봄이 다가오자 도전을 출사하더니 대내에서는 명덕한 제종을 모았다. 부처 어금니와 사리 득템하기를 소원빌었다. 정진하고 근진하기가 비록 들끓여도 1매를 위한 것이지만 실현하지가 않았다. 법으로 7일간 채워지는 한계가 상제와 천제가 만들어낸 설비라는 것이다.
二十一年甲申 修補國淸寺金塔 國主與莊穆王后 幸妙覺寺 集衆慶讚訖 右佛牙 與洛山水精念珠 如意珠 君臣與大衆 皆瞻奉頂戴 後幷納金塔內 予亦預斯會 而親見所謂佛牙者 長三寸許 而無舍利焉 無極記
이십일년갑신 수보국청사금탑 국주여장목왕후 행묘각사 집중경찬흘 우불아 여낙산수정념주 여의주 군신여대중 개첨봉정대 후병납금탑내 여역예사회 이친견소위불아자 장삼촌허 이무사리언 무극기
21년은 갑신년에 수행으로 보수하는 국청사가 탑이 금색이다. 국장은 장목왕후로 묘각사로 가는 길이다. 대중들이 모여서 경축하기가 끝나니 오른편 부처 어금니는 낙산에 소재한 수정으로 념주를 제작하였다. 여의주다. 군신과 대중들도 한 몫 하더니 봉정대를 모두 보았다. 후일에 납품한 금탑을 병합하고서 들이니 나 역시 미리 모였다. 친견소에서는 부처 어금니라는 것이 길이로는 3 마디까지 허락하였다. 이에 사리는 없을꺼라는데 기록을 끝낸 것이 없었다.
'을유문화사편 삼국유사 권3 탑상 4'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자 연습 (0) | 2019.10.13 |
---|---|
한자 연습 (0) | 2019.10.06 |
한자 연습 (0) | 2019.09.30 |
한자 연습 (0) | 2019.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