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 50회 동창회 카페에서 땄어요.
출처입니다.
부제학 최만리 상소문 전문.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0일 만에 당시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최만리등 집현전 학사들은 훈민정음 반포 반대 상소를 올렸는데 이 상소문 속에는 당시 세종이 옛 글자를 모방한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과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 중국에 대하여 얼마나 실례인가 하는 당시 선비들의 생각과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음으로 좀 번거롭지만 여기에 그 전문을 싣는다.
1)부제학(副提學) - 당시 집현전의 사실상 책임자로 그 위 대제학(大提學)은 명예직이었음
경자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등 상소문에 가로되, 신 등이 언문 제작한 것을 엎드려 보니 지혜를 움직여 그것을 제작한 것이 가히 신묘하여 천고에 특출난 것이나 신 등의 좁은 소견으로는 오히려 의심스럽고 위험한 면도 있는 것 같사와 삼가 소를 올리고 엎드려 성상의 재가를 바라옵니다. 첫째 우리 조정은 태조대왕 때부터 지성으로 중국을 섬겨 한결같이 중국의 법제를 따라와서 지금도 글자나 풍속이 중국과 한가지인 이때에 언문을 지으셨다기에 혹시나 하여 말씀을 드리옵니다.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근본으로 한 새 글자가 아니라 하셨는데 글자의 모양은 비록 옛 전자를 모방 했다하나 발음이나 글자의 조합이 옛것과 달라서 실로 옛것을 근거했다고 볼 수 없음으로 만약 이것이 중국에 흘러 들어가 혹시 비방 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중국을 섬기고 사모하는 우리 정서에 부끄러움이 아니옵니까?
또 한 가지는 자고로 구주(九州)의 안이 비록 풍토가 다르다고 해서 별도로 문자를 만들지는 않았사옵니다. 오직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 등이 각자 그들의 문자가 있으나 이는 모두 오랑캐의 일이라 족히 거론 할 것도 없사옵니다.
옛 글에 이르기를 중국의 문화로써 오랑캐를 변화시켰다는 말은 들었어도 오랑캐에게 변화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나이다. 역대중국에서는 다 우리에게 기자(箕子)의 유풍(遺風)이 있기 때문에 문물이나 예의 나 음악이 중화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지금 특별히 언문을 만들어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가 된다면 이는 소위 향료(蘇合)1)를 버리고 쇠똥구리(螗螂)2)를 취하는 것이니 이 어찌 문명을 크게 더럽히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또 한 가지 신라 설총의 이두는 비록 저속한 글이나 다 중국에 통용되는 한자를 빌려 말을 돕는데 쓰게 했기 때문에 문자(한자)와 더불어 크게 다른 점이 없었나이다. 그런고로 비록 서리(胥吏)나 노복의 무리라도 반드시 그것을 익히고자 할진대 먼저 몇 권의 책을 읽어 문자를 안 연후에야 이두를 쓰게 되니 이두를 쓰는 자는 모름지기 문자에 의지한 연후에야 능히 뜻을 전달 할 수 있는 고로 이두로 인하여 문자를 아는 자가 많으니 학문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문자를 알지 못하여 끈을 맺어서 일을 기억하는 세상이라면 일시적으로 언문을 빌려 쓰는 것은 오히려 괜찮을 것이므로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말할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편안하기보다는 좀 더디더라도 중국에 통용되는 문자를 쓰는 것이 장구한 계획이라고...
하물며 이두를 행한 지가 수천 년이라 관청의 장부나 모임을 기약하는 등의 일에 막히는 폐단이 없는데 어찌하여 오래도록 쓰이고 폐단이 없는 것을 버리고 아무 이익이 없는 비천한 언문을 만드셨나이까? 만약 언문을 쓰게 되면 관리된 자들이 언문만 익히려고 할 것이고 문자 배우기를 원하지 않아서 결국 관리들은 두파로 나뉠 것이고 관리된 자가 언문으로써 관청일을 하게 된다면 후진(後進)들은 다 그와 같이 언문 이십칠자로 세상에 입신(立身)을 하려 할 테니 어찌 수고로이 중국의 성리학을 공부하겠나이까? 만약 이같이 된다면 수십 년 후에는 참다운 문자인 한문을 아는 자가 극히 적고 언문에 능한 자만 있어서 관리들은 중국 성현의 문자를 알지 못하는 즉 사리가 담벼락을 마주한 것 같이 될 것이니 헛되이 언문만 공부한다면 장차 어디다 쓰겠나이까?
우리나라가 오래 동안 참다운 학문을 숭상해 왔는데 이 학문이 사라질까봐 두렵나이다. 전의 이두는 비록 한자로 쓰고 있는데도 유식한 사람은 오히려 비천하다고 하여 관리들의 문서를 바꾸려고 하는데 하물며 언문은 문자(한자)와는 맹세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 것들이 전용하는 말일뿐이옵니다. 가령 언문이 전의 조정(고려나 그 이전)때 부터 있던 것을 빌려 쓴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문명시기에는 오히려 글자를 분별하여 도에 이르게 하는데3) 뜻을 두어야 하거늘 오히려 구습에 따르려 하시나이까? 이는 반드시 다시 고치려는 의식있는 자가 있을 것 이며 이는 불을 보는 듯이 뻔 한 이치이옵니다.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고금을 통해서 골치 거리인데 지금 언문을 빌려 쓰는 것은 신기한 한 가지 재주에 불과한 것으로 학문에 손해가 가고 나라를 다스림에 아무런 이익이 없어 이를 반복해서 생각해봐도 옳다고 볼 수 없나이다.
또 하나 말씀하시기를 “만약 형벌이나 옥사를 이두문자로써 한다면 글자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백성이 단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억울하게 당할 수 있으나 언문으로 바로 그 말을 쓰고 읽어서 듣게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백성일지라도 모두 억지로 굴복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하셨나이다. 그러나 자고로 중국에서는 말과 글이 같은데도 옥사나 송사의 일에 원통한 일이 심히 많사옵니다. 우리나라의 일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자면 옥에 있는 죄수가 이두를 해독하여 문초한 사실을 친히 읽고 그 무고함을 알고 있다해도 매질에 못 이겨 굴복하는 자가 많을 것이옵니다. 이는 문초한 글의 뜻을 알지 못해서 당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옵니다. 만일 그렇다면 비록 언문을 쓴들 여기서 무엇이 다를 것이옵니까? 이것은 형벌과 옥사의 공평하고 불공평 한 것은 옥리(獄吏)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지 말과 글이 같고 같지 않은데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므로 언문으로 옥사를 공평히 하신다는 것에 신등은 그 옳은 바를 찾아 볼 수가 없나이다.
또 하나 무릇 일과 공을 세움에 쉽고 빠른 것을 귀하게 여지지 않는데 근래에 국가에서 일을 처단함에 모두 속성으로 하고 있으니 나라를 다스림에 그릇됨이 있을까 두렵나이다. 상고하여 말씀 드립니다. 언문을 부득이 사용하신다면 이것은 풍속을 크게 바꾸는 것으로 마땅히 재상들이나 아래로는 모든 각료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의 하셔서 모두 옳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시행시기를 세 번쯤 생각하셔서 역대의 임금에 거스름이 없고 중국에 부끄러움이 없어서 백세 후에 성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의혹스러움이 없는 연후에야 가히 시행해야 할 것이 온데 이제 널리 대중과 의논함을 택하지 아니하고 갑작스레 아전무리 수십인 에게 명하시어 그것을 익히게 하였고 또 옛사람이 이미 이루어놓은 운서(韻書)를 가볍게 고처 그 상고할 수 없는 언문을 붙여서 모아놓고 공인 수십 인을 모아 그것을 새기고 온 천하에 반포하려 하시니 후세 사람들의 공론과 논의가 어떠하겠습니까?
또 근래 성상께서 청주온천에 행차하실 때 특별히 흉년을 염려하시어 따라가는 사람이나 제반사를 간략하게 하라 하셨기에 전날에 비해 경비가 십중팔구나 절감되었고 조정에 올라오는 공무 역시 의정부에 위임하시었는데 그 언문이란 국가의 위급한 사항이나 부득이 기한을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어찌 홀로 휴양소에서까지 몰두하시어 성상께서 옥체를 조섭하실 때 번거롭게 하셨으니 신등은 그 옳은 바를 찾아볼 수가 없나이다.
또 하나는 옛 선비들이 이르기를 “무릇 백가지 애완 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다 선비의 공부하는 뜻을 빼앗게 된다. 고 하였고 지금도 좋아하는 짓만 따라가면 선비의 뜻이 상하게 되는데 지금 동궁께서는 비록 덕성(德性)은 성취하셨으나 오히려 마땅히 중국 성인들의 학문에 전염하시어 그 깨닫지 못한 것을 탐구하셔야 하는데 그 언문이라는 것을 유익한 것이라 하셨다니 그것은 단지 문사들의 재주 하나에 불과한 것 일 뿐입니다. 하물며 전혀 국가 다스림에 이로움이 없는 것에 종일 생각을 소비하시니 부지런히 공부하셔야 할 이때에 실로 손해가 크옵니다. 신 등의 글이 재주가 없어 죄를 기다립니다. 그간 시종해 오며 마음에 있던 바를 참지 못하고 감히 요점을 정리하였사오니 성상의 총기로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 庚子集賢殿副提學崔萬理等 上䟽曰臣等伏覩諺文制作至爲神妙創物運智特出千古然以臣等區區管見尙有可疑者敢布危懇謹䟽于後伏惟聖載 一. 我朝祖宗以來至誠事大一遵華制今當同文同軌之時創作諺文有駭觀聽儻曰諺文皆本古字也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若流中國或有非議者豈不有愧於事大慕華 一自古九州之內風土雖異未有因方言而別爲文字者唯蒙古西夏女眞日本西蕃之類各有其字是皆夷狄事耳無足道者傳曰用夏變夷未聞變於夷者也歷代中國皆以我國有箕子遺風文物禮樂比擬
中華今別作諺文捨中國而自同於夷狄是所謂棄蘇合之香而取螗螂之丸也豈非文明之大累栽 一新羅薛聰吏讀雖爲鄙俚然皆借中國通行之字施於語助與文字元不相離故雖至胥吏僕隸之徒必欲習之先讀數書組知文字然後乃用吏讀用吏讀者須憑文字乃能達意故因吏讀而知文字者顔多亦與學之一助也若我國元不知文字如結縄之世則姑借諺文以資一時之用猶可而執正議者必曰與其行諺文而姑息不若寧遲緩而習中國通行之文字以爲久長之計也而况吏讀行之數千年而簿書期會等事無有防礎者何用旼舊行無弊之文別創鄙諺無益之字乎若行諺文則爲吏者專習諺文不願學問文字吏員岐而爲二荀爲吏者以諺文而官達則後進皆見其如此也以爲二十七字諺文足以立身於世何須若心勞思窮性理之學哉如此則數十年之後知文字者必少雖能以諺文而施於吏事不知聖賢之文字則不學墻面昧於事理之是非徒工於諺文將何用哉我國家積累右文之化恐摲至掃地矣前此吏讀雖不外於文字有識者尙此鄙之思慾以吏文易之而况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燮魯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必有更張之議者此灼然可知之理也厭舊喜新古今通患今借諺文不過新寄一藝耳於學有損於治無益反覆藝之未見其可也一若曰如刑殺獄辭以吏讀文字書之則不知文理之愚民一字之差用或致寃今以諺文直書其言讀使聽之則雖至愚之人悉皆易曉而無抱屈者然自古中國言與文同獄訟之間寃枉甚多借以我國言之獄囚之解吏讀者親讀招辭知其誣而不勝捶楚多有枉服者是非不知招辭之文意而被寃也明矣若然則雖用諺文何異於此是知刑獄之平不平在於獄吏之如何而不在於言與文之同不同也慾以諺文而平獄辭臣等未見其可也一凡立事功不貴近速國家比來措置皆務速成恐非爲治之體儻曰諺文不得已而爲之此變易風俗之大者當謀及宰相下至百僚國人皆曰可猶先甲先庚更加三思質諸帝王而不悖者諸中國而無愧百世以俟聖人而不惑然後乃可行也今不博採群議驟令吏輩十餘人訓習又輕改古人已成之韻書附會無稽之諺文聚工匠數十人刻之劇欲廣布其於天下後世公議何如且今淸州椒水之幸特慮年兼+欠(흉년들겸)扈從諸事務從簡約比之前日十减八九至於啓達公務亦委政府若夫諺文非國家緩急不得已及其之事何獨於行在而汲汲爲之以煩聖躬調燮之時乎臣等凡未見其可也一先儒云凡百玩好皆奪志至於書札於儒者事最近然一向好者亦自喪志今東宮雖德性成就猶當潛心聖學益求其未知也諺文縱曰有益特文士六藝之一耳况萬萬無一利於治道而乃硏精費思竟日移時實有損於時敏之學也臣等俱以文墨末技待罪侍從心有所懷不敢合黙謹整肺腑仰瀆聖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