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한자 연습

영문이 2022. 8. 9. 20:57

삼국사기 14

고구려본기제이[대무신왕 민중왕 모본왕]

대무신왕입[혹운대해주유왕] 휘무휼 유리왕제삼자 생이총혜 장이웅걸유대략 유리왕재위삼십삼년 갑술 입위태자 시년십일세 지시즉위 모송씨 다물국왕송양여야

高句麗本紀第二[大武神王 閔中王 慕本王]

大武神王立[或云大解朱留王] 諱無恤 琉璃王第三子 生而聰慧 壯而雄傑有大略 琉璃王在位三十三年 甲戌 立爲太子 時年十一歲 至是卽位 母松氏 多勿國王松讓女也

고구려 본기 제2[대무신왕, 민중왕, 모본왕]

대무신왕이 입장한다. 휘는 무휼이며 유리왕에서 3남이니 출생후에는 지혜가 총명할정도로 성하니까 웅걸로써 대의전략을 짜내고 있더라. 유리왕 재위 33년은 갑술년인데 태자로 나타났으니 그 때가 11살이며 즉위까지 하였다. 엄마가 송씨로 다물국왕 송양에 여자다.

이년 춘정월 경도진 대사 백제민일천여호래투

二年 春正月 京都震 大赦 百濟民一千餘戶來投

대무신왕 2년 봄 정월이다. 국내부 위나암성 도읍지에 지진이 생겼다. 백제 백성 1천호구가 투항을 하길래 사면하였다.

삼년 춘삼월 입동명왕묘 추구월 왕전골구천 득신마 명거루 동십월 부여왕대소견사송적오 일두이신 초 부여인득차오헌지왕 혹왈 오자흑야 금변이위적 우일두이신 병이국지징야

三年 春三月 立東明王廟 秋九月 王田骨句川 得神馬 名駏䮫 冬十月 扶餘王帶素遣使送赤烏 一頭二身 初 扶餘人得此烏獻之王 或曰 烏者黑也 今變而爲赤 又一頭二身 幷二國之徵也

대무신왕 3년 봄 3월이다. 동명왕 사당이 결정났다. 가을 9월이다. 임금이 전골구천에 가셔서 신마를 습득하고는 거루라 하였다. 겨울 10월이다. 부여왕 대소가 사신을 파견하였다. 적오를 송환하라는 것인데 머리는 하나요 몸이 두 개인 것이다. 초기에 부여 사람이 습득한 적오는 임금에게 봉헌하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얘기에서는 까마귀는 검정색이나 변색과정에 적색이 출현하였다. 또 머리는 하나요 몸이 두 개인 것은 국가 두 개를 병합한다는 징조다.

왕기겸고구려호 대소희송지 겸시혹자지언 왕여군신의답왈 흑자 북방지색 금변이위남방지색 우적오서물야 군득이불유지 이송어아 량국존망 미가지야 대소문지 경회

王其兼高句麗乎 帶素喜送之 兼示或者之言 王與群臣議答曰 黑者 北方之色 今變而爲南方之色 又赤烏瑞物也 君得而不有之 以送於我 兩國存亡 未可知也 帶素聞之 驚悔

임금이 고구려를 병행하였다. 부여왕 대소는 송환하는 길에서 직접 보거나 추정지에서 생겨난 언어로 임금과 더불어 군신 사이에 대의로써 대답을 하였다. 흑이여, 북방색이여 지금 변해가는 남방 색상이다는 것이다. 또 적오는 서물이다. 군신이 습득하면은 용도를 모르니 내게 송환을 해준다면 부여와 고구려가 아직은 망할 정도가 아니게 알아차리게 할 것이다. 대소가 들으니 참회를 두려워한다.

사년 동십이월 왕출사 벌부여 차비류수상 망견수애 약유여인 여정유희 취견지 지유정 사지취 불대화자열 인득작사 포일군 홀유일장부왈 시정오가물야

四年 冬十二月 王出師 伐扶餘 次沸流水上 望見水涯 若有女人 舁鼎游戲 就見之 只有鼎 使之炊 不待火自熱 因得作食 飽一軍 忽有一壯夫曰 是鼎吾家物也

대무신왕 4년 겨울 12월이다. 임금님과 스승이 부여 정벌을 한다. 비류수 위에서 수애를 기대삼고 보는데 여인이 있어서 솥을 머리에 이고서 힘들게 간다. 뒤 따라가보자 솥 만 있었을 뿐인 상황이라면, 이럴 때 더위는 화기 사용을 기다린 것이 아닌데도 밥짓기를 마친 것인데 군사에게 밥을 먹인 것이니 갑자기 어느 장부가 있어서 말한 것이다. 솥이 가물이올시다. 연속해서

 

아매실지 왕금득지 청부이종 수사성부정씨 저이물림숙 야문금성 향명 사인심지 득금새병물등 왈 천사야

我妹失之 王今得之 請負以從 遂賜姓負鼎氏 抵利勿林宿 夜聞金聲 向明 使人尋之 得金璽兵物等 曰 天賜也

나는 누이를 실종하였는데 임금이 지금 습득한 것인가 봐요. 제가 책임지고 평생 충성할 테니까 부정씨를 하사해주세요. 이익실현을 거절하지 못하고 물림에서 하숙을 하는데 밤에 금씨 성을 듣고나니 잘 들리는 것이다. 사신과 사람이 찾아나선 것은 금새병물을 습득하고서 나란히 하며 말한 것이 하늘이 하사했다.

 

배수지 상도유일인 신장구척허 면백이목유광 배왕왈 신시북명인괴유 절문대왕북벌부여 신청종행 취부여왕두 왕열허지 우유인왈 신적곡인마로 청이장모위도 왕우허지

拜受之 上道有一人 身長九尺許 面白而目有光 拜王曰 臣是北溟人怪由 竊聞大王北伐扶餘 臣請從行 取扶餘王頭 王悅許之 又有人曰 臣赤谷人麻盧 請以長矛爲導 王又許之

감사히 받았다. 위로 가는 길에 사람이 있어 보이니 신장이 9척이나 되었다. 허락해보니까 얼굴이 희고 이목광이 뚜렷하다. 임금에게 감사히 말한다. 신하는 북명사람 괴유입니다. 대왕님 소식을 몰래 들은 것은 부여 북쪽을 정벌한다는 것인데 신하로 동행을 요청드려요. 제가 부여왕 머리를 벨 것입니다. 임금이 허락하였다. 또 있던 사람이 말한다. 신하는 적곡 사람 마로입니다. 장모를 제게 주시면 길 가는데 장애물들을 도륙할 것입니다. 임금이 또 허락했다.

오년 춘이월 왕진군어부여국남 기지다니도 왕사택평지위영 해안휴졸 무공구지태 부여왕거국출전

五年 春二月 王進軍於扶餘國南 其地多泥塗 王使擇平地爲營 解鞍休卒 無恐懼之態 扶餘王擧國出戰

대무신왕 5년 봄 2월이다. 임금이 군사를 전진시켜서 부여국 남쪽에 진열을 갖췄다. 전장지 다니도에서 임금이 사신과 평지 선택을 맡고서 군영으로 간주하였다. 기병들은 휴식을 하는데 두려울 게 없는 군대인가 보다. 부여왕은 거국을 일으켜 출전을 한다.

욕엄기불비 책마이전 함녕불능진퇴 왕어시휘괴유 괴유발검호후격지 만군피미 불능지 직진집부여왕

欲掩其不備 策馬以前 陷濘不能進退 王於是揮怪由 怪由拔劍號吼擊之 萬軍披靡 不能支 直進執扶餘王

기습하려는데 준비가 안 되었는지 기마병을 앞세운 전략인데도 함녕에서 진격과 퇴각이 잘 안되었다. 임금은 이에 임금이 괴유에게 지시한 것은 괴유에게 단검을 빼서 피리를 불으라는 거 였으니 이에 만군병들은 사기가 몰려들어서 함녕을 점령 안하게 되어서 직접 부여왕을 잡은 것이다.

참두 부여인 기실기왕 기력최절 이유불자굴 위수중 왕이양진사기 우구불지소위 내걸령어천

斬頭 扶餘人 旣失其王 氣力摧折 而猶不自屈 圍數重 王以糧盡士饑 憂懼不知所爲 乃乞靈於天

부여인 머리를 베어라. 실패한 임금은 기력이 꺽였어도 굴복하지를 않았으니 전장을 무겁게만 할 뿐이다. 임금은 곡식을 가뭄든 선비들에게 우선 지급하고서 근심을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하늘 신령님에게 진심 껏 빌어라

홀대무지척불변인물칠일 왕영작초우인 집병입영내외 위의병 종간도잠군야출 실골구천신마 비류원대정 지이물림 병기불흥 득야수이급식 왕기지국

忽大霧咫尺不辨人物七日 王令作草偶人 執兵立營內外 爲疑兵 從間道潛軍夜出 失骨句川神馬 沸流源大鼎 至利勿林 兵飢不興 得野獸以給食 王旣至國

갑자기 큰 안개가 사람과 사물을 구별조차 못할 만큼 7일간 덮쳤는데 임금은 병영에서 우연히 주둔하다가 내외를 집병할 자들을 만들면서 의병이라 하였다. 간도는 잠겼을 때 군사가 출전을 한다. 골구천에서 신마를 분실하고 비류수를 지나 원대정을 이끌고 이물림을 지나니까 굶주린 군사가 부흥하지 못해서 들에 있는 짐승을 획득하여 급식을 멕이고 나니까 임금님이 도착을 하였다는 것이다.

내회군신음지왈 고이불덕 경벌부여 수살기왕 미멸기국 이우다실아군자 차고지과야 수친적사문질 이존위백성 시이국인감왕덕의 개허살신어국사의

乃會群臣飮至曰 孤以不德 輕伐扶餘 雖殺其王 未滅其國 而又多失我軍資 此孤之過也 遂親吊死問疾 以存慰百姓 是以國人感王德義 皆許殺身於國事矣

군신이 모여들어서 사음을 하다가 말한다. 외로움이 아니어야 덕이다. 부여 정벌을 할 때 임금을 사살하였어도 부여국은 멸망하지 않았고 고구려 군사에도 패잔병이 많았다. 외로움은 통행과정이다. ‘적사해놓고 아프냐고 묻는 것이 백성에게는 위로로 있으니까 나라 사람들이 감동하기를 임금이 가진 의병에 덕이다는 것이다. 살신하기로 허락한 자들만 국사에 전념을 하여라.

삼월 신마거루장부여마백필 구지학반령하거회곡 하사월 부여왕대소제 지갈사수빈 입국칭왕 시부여왕금와계자 사실기명 초 대소지견살야

三月 神馬駏䮫將扶餘馬百匹 俱至鶴盤嶺下車廻谷 夏四月 扶餘王帶素弟 至曷思水濱 立國稱王 是扶餘王金蛙季子 史失其名 初 帶素之見殺也

3월이다. 신마, 거루가 부여에서 말 100필이 함께 학반령 아래 거회곡에서 도착하였다. 여름 4월이다. 부여왕 대소에 동생이 갈사수빈에 도착하고는 국가 건립하고 왕이라 칭하였고 부여왕에서 금와 계자인이니 역사 분실로 무명인으로 남았다. 처음 대소를 보면 사살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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