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왕 휘해색주 대무신왕지제야 대무신왕훙 태자유소 불극즉정 어시 국인추대이입지 동십일월 대사
閔中王 諱解色朱 大武神王之弟也 大武神王薨 太子幼少 不克卽政 於是 國人推戴以立之 冬十一月 大赦
민중왕에서 휘호는 해색주이니 대무신왕에서 동생이다. 대무신왕이 서거하는 날 태자가 유아기 소년이라서 국정운영을 안하였으니 국부에서는 추대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하였다. 겨울 11월 면사첩을 발행한다.
이년 춘삼월 연군신 하오월 국동대수 민기 발창진급
삼년 추칠월 왕동수 획백장 동십일월 성패우남 이십일이멸 십이월 경도무설
二年 春三月 宴群臣 夏五月 國東大水 民饑 發倉賑給
三年 秋七月 王東狩 獲白獐 冬十一月 星孛于南 二十日而滅 十二月 京都無雪
민중왕 2년 봄 3월이다. 군신들이 연회를 즐긴다. 여름 5월이다. 동쪽에서 홍수가 났다. 가뭄도 발생하였다. 발창진에서 넉넉히 공급하였다.
민중왕 3년 가을 7월이다. 임금이 동쪽으로 사냥하러 가다가 백장을 획득하였다. 겨울 11월이다. 혜성 빛깔이 남쪽행 하는데 20일을 채우지 않고서 빛깔이 소멸하였다. 12월이다. 국내부 위나암성에 눈이 안왔다.
사년 하사월 왕전어민중원 추칠월 우전 견석굴 고위좌우왈 오사 필장어차 불수갱작능묘 구월 동해인고주이헌경어목 야유광 동십월 잠우락부대가대승등일만여가 예낙랑투한[후한서운 대가대승등만여구]
四年 夏四月 王田於閔中原 秋七月 又田 見石窟 顧謂左右曰 吾死 必葬於此 不須更作陵墓 九月 東海人高朱利獻鯨魚目 夜有光 冬十月 蠶友落部大家戴升等一萬餘家 詣樂浪投漢[後漢書云 大加戴升等萬餘口]
민중왕 4년 여름 4월이다. 임금이 둔전지 민중원으로 가셨다. 가을 7월이다. 또 둔전지로 가셨다가 석굴을 보는데 좌우로 도리도리 하시며 꺼내신다. 내가 사망을 한다면 여기서 장례를 치루어주면은 좋겠는데 싫으면 능묘를 세워달라. 9월이다. 동해지역 사람 고주이가 고래눈을 헌납을 한다. 밤이면 밤마다 광채가 떴다. 겨울 10월이다. 잠우락은 대가대승 포함한 1만 호가들을 끌어와서는 낙랑에다가 한나라 소재지를 투척하였다. (후한서에는 대가 대승은 1만명으로 하였다.)
오년 왕훙 왕후급군신 중위유명 내장어석굴 호위민중왕
五年 王薨 王后及群臣 重違遺命 乃葬於石窟 號爲閔中王
민중왕 5년에 왕이 사망하였다. 후왕과 군신들을 미치게 하려든 것은 왕에 유언장을 위반하면 분실하는 것이니 석굴에 가서 장례를 진행하고서 민중왕으로 하였다.
모본왕 휘해우[일운해애루] 대무신왕원자 민중왕훙 계이즉위 위인 폭려불인 불휼국사 백성원지
慕本王 諱解憂[一云解愛婁] 大武神王元子 閔中王薨 繼而卽位 爲人 暴戾不仁 不恤國事 百姓怨之
모본왕에서 휘호는 해우이나 [해애루이기도 한데] 대무신왕에서 원자이니 민중왕이 사망할 때에 즉위를 상속 안하였대서 사람이 되었고 폭정이 아니어도 사랑스럽지 않으며 국사만을 구휼해가니까 백성에게는 원망이다.
원년 추팔월 대수 산붕이십여소 동십월 입왕자익위왕태자
元年 秋八月 大水 山崩二十餘所 冬十月 立王子翊爲王太子
모본왕 원년 가을 8월에 홍수가 났는데 산사태가 20여 땅을 엎었다. 겨울 10월이다. 왕자 익이 입장하고서 왕에 태자로 하였다.
이년 춘 견장습한북평어양상곡태원 이요동태수채동 이은신대지 내부화친 삼월 폭풍발수 하사월 운상우박 추팔월 발사진휼국내기민
二年 春 遣將襲漢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蔡彤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三月 暴風拔樹 夏四月 殞霜雨雹 秋八月 發使賑恤國內饑民
모본왕 2년 봄이다. 한나라 북평에 있는 어양 소재지 상곡태원에 기습을 준비하는데 요동태수 채동에서는 은신이거든 기다려주세요 하니까 또 화친을 맺은 것이다. 미친 바람이 나무를 뽑았다. 여름 4월에 서리와 비와 우박이 동시 추락하였다. 가을 8월이다. 국내부 위나암성에 가뭄이 들어서 사신에게 시킨 것은 진휼하라는 거다.
사년 왕일증폭학 거상좌인 와칙침인 인혹동요 살무사 신유간자 만궁사지
四年 王日增暴虐 居常坐人 臥則枕人 人或動搖 殺無赦 臣有諫者 彎弓射之
모본왕 4년 임금이 폭력에 학대가 붙어서 언제나 앉아 있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을 베개 위로 엎드려라는 걸 본뜨시니 이에 사람들은 소란스러워가고 사살에는 사면도 없는 것이다. 이에 신하에서 간자가 활을 쏘았다.
육년 동십일월 두노시기군 두노 모본인 시왕좌우 려기견살 내곡 혹왈 대장부하곡위 고인왈 무아칙후 학아칙수 금왕행학이살인 백성지수야 이기도지 두노장도이진왕전 왕인이좌 어시 발도해지 수장어모본원 호위모본왕
六年 冬十一月 杜魯弑其君 杜魯 慕本人 侍王左右 慮其見殺 乃哭 或曰 大丈夫何哭爲 古人曰 撫我則后 虐我則讎 今王行虐以殺人 百姓之讎也 爾其圖之 杜魯藏刀以進王前 王引而坐 於是 拔刀害之 遂葬於慕本原 號爲慕本王
모본왕 6년 겨울 11월이다. 두노가 임금을 사살하였다. 두노는 모본 사람이다. 임금에서 좌보와 우보를 시중드는데 어떻게 죽일지만을 보았다. 노래를 하자. 아니면, 대장부가 울어서 무엇을 해결하려고 하겠는가?
오랜 사람들 얘기는 이러하다.
왕후와 악수를 하면 원수를 학대 하여야 하고 임금님 가실 때에 학대라는 것은 사람 죽이기니 백성들이 웬수라는 것이다. 이런 그림은 두노가 감춘 것이니 왕전에 전진할 때에 칼을 휴대하고서 임금과 포옹하거나 앉을 때가 때인 것이다. 이렇게 휴대용 칼로써 해친 것이고 모본원에서 장례를 치루어 드리니 모본왕이라 불린다.
삼국사기 14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