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년 추칠월 수성렵어왜산 여좌우연 어시 관나우태미유환나우태어지유비류나조의양신등 음위수성왈 초 모본지훙야
八十年 秋七月 遂成獵於倭山 與左右宴 於是 貫那于台彌儒桓那于台菸支留沸流那皂衣陽神等 陰謂遂成曰 初 慕本之薨也
태조대왕 80년 가을 7월이다. 책성에서는 왜산으로 사냥가는데 좌우에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장에서는 관나 우태 미유와 환나 우태 어지유와 비류나 조의 양신이 나서서 술잔을 들어올려 말하는 것은 처음 모본왕이 사망하였을 때에다.
태자불초 군료욕입왕자재사 재사이노양자자 욕사형노제급 금왕기이노의 이무양의 유오자계지
太子不肖 群寮欲立王子再思 再思以老讓子者 欲使兄老弟及 今王旣已老矣 而無讓意 惟吾子計之
태자가 아빠를 닮지 않아서 관료들은 왕위 상속자를 또 생각해달라 하는 마음에 노인에게 존재하는 양자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사신과 형과 노인과 동생은 임금은 쇠약하지 않았다 하는 것이다. 뜻을 사양할 수 조차 없게 되더니 내게 존재하는 작전을 늘리게 되었다.
수성왈 승습필적 천하지상도야 왕금수노 유적자재 개감기유호
遂成曰 承襲必嫡 天下之常道也 王今雖老 有嫡子在 豈敢覬覦乎
작전은 이러하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장엔 반드시 습격을 하는 것이 천하에 상도라 했어요. 임금님편 노인이어도 적장에도 자식이 있는 바, 진영 밖을 넘본다는 건 할 수 없는 짓이외다.
미유왈 이제지현 승형지후 고역유지 자기물의 어시 좌보패자목도루 지수성유이심 칭질불사
彌儒曰 以弟之賢 承兄之後 古亦有之 子其勿疑 於是 左輔沛者穆度婁 知遂成有異心 稱疾不仕
관나 우태 미유가 말한다. 동생에게 있는 현명함이 형에게 있는 승리감을 추락시키니 오래동안 있어온 거라서 남 자식을 의심하지 말아라. 그러던 와중에 좌보 패자인 목도루는 배심자가 있을 것이다는 것을 알고는 아프면 공무원 하지를 말아라 하였다.
팔십육년 춘삼월 수성렵어질양 칠일불귀 희락무도 추칠월 우렵기구 오일내반
八十六年 春三月 遂成獵於質陽 七日不歸 戱樂無度 秋七月 又獵箕丘 五日乃反
태조대왕 86년 봄 3월이다. 책성에서 질량으로 사냥가는데 7일간 귀가를 하지 않았다. 제도권이 없는 공간에서 맘 껏 놀고 즐긴 것이다. 가을 7월이다. 사냥도구 기구를 사용하여 5일날 되돌려 준다.
기제백고간왈 화복무문 유인소소 금자이왕제지친 위백료지수 위이극의 공역성의
其弟伯固諫曰 禍福無門 惟人所召 今子以王弟之親 爲百寮之首 位已極矣 功亦盛矣
아우 뻘에서 당백 고간이 말을 한다. 무문에는 재앙과 복록이 존재하여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통인 것이다. 지금 자식이 있으면 임금님과 태자 사이에 친을 선보여야 모든 동료들이 품위를 지킬 것이요. 전공 역시 채워갈 것이요.
의이충의존심 예양극기 상동왕덕 하득민심 연후부귀불이어신 이화란불작의
宜以忠義存心 禮讓克己 上同王德 下得民心 然後富貴不離於身 而禍亂不作矣
친을 선보인다는 것은 충의존심은 이러하다. 경례를 안하는 자는 나보다 높은 사람이며, 임금님과 임금님 덕은 주상에서는 같게 하며, 백성과 백성 마음을 습득하는 것은 다음이다. 충의존심이 생겨나는 후일날 생성하는 부귀는 이별하지 않으면 몸에 달라붙을 것이니 재앙이 달라붙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금불출어차 이탐락망우 절위족하위지
今不出於此 而貪樂忘憂 竊爲足下危之
지금 책성에서 가출하려고 하면 건망증과 근심에서 탐락이 스며들어서 도둑이야 하니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답왈 범인지정 수불욕부귀이환락자재 이득지자 만무일이 금오거가락지세 이불능사지 장언용재 수불종
答曰 凡人之情 誰不欲富貴而歡樂者哉 而得之者 萬無一耳 今吾居可樂之勢 而不能肆志 將焉用哉 遂不從
대답을 한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동정이 부귀해지고 싶지 않은 자는 누구며 연예인 그 존재 자체가 재앙이라는 것인가. 습득물품을 쟁취한 자에서는 만물이 없다고 들릴 것이니 기생들이 세력형성을 하고 있으려면 방자하지 않아도 잘 될 것이다. 소비용품이 존재하는 것도 재앙이던가. 책성 성주는 추종자를 안보냈다.
구십년 추구월 환도지진 왕야몽 일표설단호미 각이문기길흉 혹왈 호자 백수지장 표자 동류이소자야
九十年 秋九月 丸都地震 王夜夢 一豹齧斷虎尾 覺而問其吉凶 或曰 虎者 百獸之長 豹者 同類而小者也
태조대왕 가을 9월이다. 환도에 지진이 났다. 임금님이 야몽하였다. 표범은 혀가 잘리고 호랑이 꼬리가 잘렸다. 길흉을 물어보기도 하고 터득해가기도 하는데 호랑이는 장수동물이요 표범은 소식해야 하는 장수동물이다는 것이다.
의자왕지족류 태유모절대왕지후자호 왕불열 위우보고복장왈 아작몽유소견 점자지언여차 위지내하
意者王之族類 殆有謀絶大王之後者乎 王不悅 謂右輔高福章曰 我昨夢有所見 占者之言如此 爲之奈何
의미 있는 자들은 임금에게 고구려에 있는 종족이 위태롭게 있으니 대왕님 후계자들이 작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임금님도 기쁘지도 않아서 우보 고복장을 불러와서 말하게 한 것은 임금님 꿈이 갖는 해몽 의견을 드리니 점복술은 해몽하는 언어 사용량이니 예단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답왈 작불선 칙길변위흉 작선 칙재반위복 금대왕우국여가 애민여자 수유소이 용하상호
答曰 作不善 則吉變爲凶 作善 則災反爲福 今大王憂國如家 愛民如子 雖有小異 庸何傷乎
이어서 선은 제작할 것은 아니나 좋은 것이 변하게 하면 흉이다. 선을 제작할 것이라 하면은 재앙을 반대로 하면 복이다. 지금 대왕에 근심이 국가와 더불어 가정에도 있으니 사랑이 있는 백성에게는 자식이 따라하고 있어서니 조금 다르게 있을 수 있어도 상처도 회복하려면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구십사년 추칠월 수성렵어왜산지하 위좌우왈 대왕노이불사 오치즉장모의 불가대야
九十四年 秋七月 遂成獵於倭山之下 謂左右曰 大王老而不死 吾齒卽將暮矣 不可待也
태조대왕 94년 가을 7월이다. 책성에서 왜산 아랫방향으로 사냥하러 가는데 좌우가 떠들어댄다. 대왕님은 노인이시나 사망을 하지 않으셨으니 몽니를 부리시는 것도 멈출 때가 되셨어요. 대답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유원좌우 위아계지 좌우개왈 경종명의 어시 일인독진왈 향 왕자유불상지언 이좌우불능직간 개왈경종명자 가위간차유의
惟願左右 爲我計之 左右皆曰 敬從命矣 於是 一人獨進曰 向 王子有不祥之言 而左右不能直諫 皆曰敬從命者 可謂姦且諛矣
좌우 대신들에게도 소원을 생각해보면 나 역시 들어줄 것이야. 그러니 모두 떠들어댄다. 명령만 주시면 공경하겠나이다. 한명이 스스로 전진을 한다. 구합니다. 왕자들이 상서로운 조짐 표현을 안 하고 있어서 좌우대신들이 아니어도 직간할 수가 없사오니 모두가 명령만 주시면 공경하려고 드는데 간언을 한다는 것은 아첨일 뿐입니다.
오욕직언 미지존의여하 수성왈 자능직언 약석야 하의지유 기인대왈 금대왕지현 내외무이심 자수유공 솔군하간유지인 모폐명상 차하이장이단누 계만균지중이도예호 수부우인 유지기불가야
吾欲直言 未知尊意如何 遂成曰 子能直言 藥石也 何疑之有 其人對曰 今大王之賢 內外無異心 子雖有功 率群下姦諛之人 謀廢明上 此何異將以單縷 繫萬鈞之重而倒曳乎 雖復愚人 猶知其不可也
내게 직언을 하는 걸 알지 못하는 그대여 뜻을 높였다는 것은 어떡해 증명하겠는가? 증명이라도 해볼 텐가? 왕자들이 하는 직언은 약돌이요. 의혹투성이라서 사람들이 항상 대왕님이 가진 현명함이면 국내나 국외에는 다른 마음이 생겨날 수가 없으니 왕자들에게 공로가 있을지 언정 국방을 통솔하려고 드는 자들에게 아래로 간사하고 아첨을 해대는 자들이 존재하면은 작전이 안 먹혀 들어요. 이 것 역시도 다른 것이 실뜨기를 하면 철릭을 제작해 가는 과정에 실밥이 촘촘해지는 것이니 장수가 배고파 죽지는 않을 것이외다. 또 다른 우인들이 존재할수록 안다는 정도에선 아닌 것이지요.
약왕자개도이려 효순사상 칙대왕심지왕자지선 필유읍양지심 불연칙화장급야
若王子改圖易慮 孝順事上 則大王深知王子之善 必有揖讓之心 不然則禍將及也
왕자들이 그림 바꾸기가 쉬운 생각에 효를 순서대로 전념하면은 대왕에게 있는 심지는 왕자에게는 선이나 반드시 거부하는 읍도 있어야 하는데 아닐 경우에는 재앙이 재앙을 만나는 것입니다.
수성불열 좌우투기직 참어수성왈 왕자이대왕년노 공국조지위 욕위후도 차인망언여차 아등유공누설 이치환야
遂成不悅 左右妬其直 讒於遂成曰 王子以大王年老 恐國祚之危 欲爲後圖 此人妄言如此 我等惟恐漏洩 以致患也
책성 지키기는 기쁘지 않다. 좌우 대신들은 직언을 샘내는 것이냐. 누구를 해치워야 하는 것이냐? 왕자에게는 대왕님이 노인으로 보는데 두려움은 국복이 위태로워지면 그림 바꿔치기는 그림완성을 늦추기로 갈 것이니 이런 사람들이 한다는 망언도 그러합니다. 협박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기밀누설이니 내게 있는 고통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의살이멸구 수성종지 추팔월 왕견장 습한요동서안평현 살대방령 약득낙랑태수처자
宜殺以滅口 遂成從之 秋八月 王遣將 襲漢遼東西安平縣 殺帶方令 掠得樂浪太守妻子
사살을 하려거든 입을 제거해주세요. 그대로 하였다. 가을 8월이다. 임금님이 장군을 파견보낸다. 한나라 요동지역 서안평현이 습격하여서 대방군령을 사살하고 낙랑태수와 처자들을 약탈하였다.
동십월 우보고복장언어왕왈 수성장반 청선주지 왕왈 오기노의 수성유공어국 오장선위 자무번려 복장왈 수성지위인야
冬十月 右輔高福章言於王曰 遂成將叛 請先誅之 王曰 吾旣老矣 遂成有功於國 吾將禪位 子無煩慮 福章曰 遂成之爲人也
겨울 10월이다. 우보 고복장이 임금님 앞에서 말한다. 요동지역 서안평에는 배반에 조짐이 있으니 사살하여야 합니다. 임금님은 난 인제 노인이야. 요동은 국가에 공로가 있어서 왕에서 하야를 하려고 하거든. 내겐 자식이 없어서 괴로운 생각들이다. 고복장이 말한다. 요동을 지키는 것도 사람입니다.
인이불인 금일수대왕지선 칙명일해대왕지자손 대왕단지시혜어불인지제 불지이환어무고지자손호 원대왕숙계지
忍而不仁 今日受大王之禪 則明日害大王之子孫 大王但知施惠於不仁之弟 不知貽患於無辜之子孫乎 願大王熟計之
참기에는 어진게 아니진 않은데 지금 대왕님이 선양 수업을 하시는 것은 명일엔 손해가 생기는데 임금에게 자손이 장애물입니다. 쓸모 없어도 은혜를 베푸시는데 불인한 아우들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근심은 무고한 자식 손주들만 전달 받잖아요. 소원은 대왕님이 하시는 반숙한 계략입니다.
십이월 왕위수성왈 오기노 권어만기 천지력수재여궁 황여내참국정 외총군사 구유사직지공 윤새신민지망 오소부탁 가위득인 작여기즉위 영부우휴 내선위 퇴노어별궁 칭위대조대왕
十二月 王謂遂成曰 吾旣老 倦於萬機 天之曆數在汝躬 況汝內參國政 外摠軍事 久有社稷之功 允塞臣民之望 吾所付託 可謂得人 作汝其卽位 永孚于休 乃禪位 退老於別宮 稱爲大祖大王
겨울 12월, 임금님이 책성에서 말한다. 난 쇠약하지 않았다. 1만 기병에게 휴식을 줄 것이다. 천력을 계산해보니 내게 수명이 조금 있는 바, 국정에 참여하는 자들이 이토록 없었는가? 밖에 총군사는 오래동안 사직 공로가 있어서 백성과 신하들은 진실로 국경 방문이 희망이다. 나도 부탁 하나를 하지. 사람을 얻거든 너희들은 즉위식을 거행하여라. 즉위가 길어지면 잠시 휴식도 있다. 내 즉위를 할 때 노인들은 퇴장을 하고 궁을 구별해서 대조대왕이라고 부르라
[후한서운 안제건광원년 고구려왕궁사 자수성입 현토태수요광상언 욕인기상 발병격지 의자개이위가허 상서진충왈 궁전걸힐 광불능토 사이격지 비의야
[後漢書云 安帝建光元年 高句麗王宮死 子遂成立 玄菟太守姚光上言 欲因其喪 發兵擊之 議者皆以爲可許 尙書陳忠曰 宮前桀黠 光不能討 死而擊之 非義也
후한서에 전한다. 후한 안제 건광 원년이다. 고구려 왕궁에서 사망하였다. 왕자 수성이 입장하는데 현토 태수 요광이 상언을 한다. 초상난 원인에는 장병과 출발하여 전장을 자주 격전지로 하였으니 의논을 하는 자들이 모두 싸우라고 해서다. 이에 상서령 진충이 말하는 것은 궁전 앞에 있는 무기는 약아빠져서 요광이 아니면 토벌을 잘하는데 사망하는 와중에도 진격을 하시었으니 전의를 불지른 것이 아니오
의견적문 인책양전죄 사불가주 취기후선 안제종지 명년 수성환한생구
宜遣吊問 因責讓前罪 赦不加誅 取其後善 安帝從之 明年 遂成還漢生口
사신을 파견하여 안부를 여쭙고 책성에서는 전죄를 모두 떠넘기셔야 사면이 있고 아니면 사살뿐이니 후왕에 있는 선량함을 취합하면 됩니다. 후한 안제는 그대로 하였다. 올해 고구려에서 생구가 돌아왔다.
안해동고기 고구려국조왕고궁이후한건무이십구년 계사즉위 시년칠세 국모섭정 지효환제본초원년병술 손위양모제수성 시 궁년일백세 재위구십사년 칙건광원년 시궁재위제육십구년 칙한서소기 여고기저오불상부합 개한서소기오야]
案海東古記 高句麗國祖王高宮以後漢建武二十九年 癸巳卽位 時年七歲 國母攝政 至孝桓帝本初元年丙戌 遜位讓母弟遂成 時 宮年一百歲 在位九十四年 則建光元年 是宮在位第六十九年 則漢書所記 與古記抵捂不相符合 豈漢書所記誤耶]
해동고기를 인용하는데 고구려국에서는 조왕을 궁에 모셨다는 기록이 후한 건무 29년일이다. 계사년에 즉위를 하고, 7세에 시작하였다. 국모에게서 국정을 수습하고 환제 본초 원년 병술에 효를 마쳤다. 왕에 지위는 양모 동생 수성에게로 간다. 때에 1백년을 사시고 94년을 거행하셨으니 건광원년인 것이다. 고구려 궁에서 재위를 69년을 하였다. 한서에 기록이다. 고기 기록을 더불어 보니까 일치하지를 않는다. 한서에 기록이 오기가 있다고 할 게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