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자 연습

영문이 2018. 1. 22. 20:35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림이사금 이병도 역

基臨尼師今(기림이사금)

○ 基臨尼師今(기림[혹은 基立(기립)이라고도 한다]이사금)이 즉위하니, (그는) 助賁尼師今(조분이사금)의 손자로서, 아버지는 乞淑(걸숙) 用飡(용[伊(이)?]찬)[一說(일설)엔 乞淑(걸숙)은 助賁(조분)의 손자라 한다]이다. 성품이 寬厚(관후)하여 남들이 다 칭송하였다.

○ 2년 정월에 長昕(장흔)으로 이찬을 삼아 내외의 兵馬事(병마사)를 겸장케 했다. ○ 2월에 시조묘에 제사하였다.

○ 3년 정월에 왜국과 교빙하고, 2월에 왕이 比列忽[비열홀134):安邊(안변)]에 巡幸(순행)하여 나이 많이 먹은 자와 가난한 자를 친히 存問(존문)하고 곡식을 내리되 차가 있었다. ○ 3월에 牛頭州[우두주135):春川(춘천)]에 이르러 太白山(태백산)을 望祭(망제)하였다. ○ (3월에) 樂浪(낙랑)과 帶方(대방) 두 나라가 歸服(귀복)하였다.136)○ 5년 春夏(춘하)에 가뭄이 있었다.

○ 7년 8월에 지진이 있었고 샘이 솟았으며, 9월에 京都(경도)에서 지진으로 民屋(민옥)이 무너져 죽은 사람도 있었다.

○ 10년에 國號(국호)를 다시 新羅(신라)라 하였다.137)○ 13년 5월에 왕이 여러 날 누워 앓자 내외의 죄수를 놓아 주었다. ○ 6월에 왕이 (마침내) 돌아갔다.

134) 비열홀 : 比列忽[비열홀:安邊(안변)]과 牛頭州(우두주)는 다 후일 發展時代(발전시대)에 얻은 땅이므로 基臨時(기임시)의 사실이라고는 볼 수 없다.

135) 우두주 : 比列忽[비열홀:安邊(안변)]과 牛頭州(우두주)는 다 후일 發展時代(발전시대)에 얻은 땅이므로 基臨時(기임시)의 사실이라고는 볼 수 없다.

136) 樂浪(낙랑)과 帶方(대방) 두 나라가 歸服(귀복)하였다 : 이 역시 믿기 어려운 記事(기사).

137) 다시 新羅(신라)라 하였다 : 국호를 신라로 정하기는 (후에 말하겠지만) 智證王(지증왕) 4년의 사실이다.

基臨尼師今

○ 基臨【一云基立】尼師今立, 助賁尼師今之孫也, 父乞淑伊湌【一云, 乞淑助賁之孫也】, 性寬厚, 人皆稱之

○ 二年, 春正月, 拜長昕爲伊湌兼知內外兵馬事, 二月, 祀始祖廟

○ 三年, 春正月, 與倭國交聘, 二月, 巡幸比列忽, 親問高年及貧窮者, 賜穀有差, 三月, 至牛頭州, 望祭太白山, 樂浪帶方兩國歸服

○ 五年, 春夏旱

○ 七年, 秋八月, 地震, 泉湧, 九月, 京都地震, 壤民屋, 有死者

○ 十年, 復國號新羅

○ 十三年, 夏五月, 王寢疾彌留, 赦內外獄囚, 六月, 王薨

기림이사금

○기림은 [基立에서 基臨사이 혼용하였다.] 이사금은 조분이사금에서 여식으로 아빠가 이찬 등급이라는 걸숙이다. [조분이사금에서 손주일수도 있다.] 성질에서 관상이 두꺼비라고 사람들이 놀려댔다.

○2년 봄 정월에 장흔이 사퇴를 하고 이찬등급과 내외병마사를 장악하려고 했다. 2월이 오자 조묘에 사시를 했다.

○3년 봄 정월에 왜나라와 사귀려고 2월이 되자 찾아갔다. 비열홀을 순시 관찰 하다가 가난한자랑 곤궁한자에게서 이번 년도에 친한척하다가 곡식분배 하였으니 실수투성이였다. 3월에 우두 마을에 들어가니까 태백산에서 산신제를 원하여서 낙랑국 대방국 두나라로 옷을 돌려보냈다.

○5년 봄 가뭄이 여름까지 진행하였다.

○7년 가을8월에 지진으로 우물이 넘쳤다. 9월에 경도에 난 지진은 양민 주거지를 덮쳐서 시체밭을 이뤘다.

○10년 나라에 돌아오니까 국명 신라로 호국하였다.

○13년 여름 정월은 왕실 침상에 괴질병이 유행하여서 모든 죄인을 사면했다. 6월에 임금이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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