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신라본기 제2 조분이사금 이병도 역
助賁尼師今(조분이사금)
○ 助賁尼師今(조분[또는 諸貴(제귀)[賁(분) ?]라고도 함]이사금)이 즉위하니, 성은 昔(석)씨, 伐休尼師今(벌휴이사금)의 손자다. 아버지는 骨正(골정:혹은 忽爭(홀쟁)이라고도 함) 葛文王(갈문왕)이요, 어머니는 金(김)씨, 玉帽(옥모)부인으로 仇道葛文王(구도갈문왕)의 딸이며, 妃(비)는 阿爾兮(아미혜)부인으로 奈解王(내해왕)]의 딸이니, 前王[전왕:奈解(내해)]이 장차 돌아가려 할 때 유언하여 사위 助賁(조분)으로 位(위)을 잇게 한 것이었다. ○ 왕은 키가 크고, 風采(풍채)가 아름다우며, 일에 대하여는 밝게 裁斷(재단)하므로, 國人(국인)이 그를 畏敬(외경)하였다.
○ 원년에 連忠(연충)을 拜(배)하여 이찬을 삼아 軍國(군국)의 일을 맡겼다. ○ 7월에 [王(왕)이] 시조묘에 拜謁(배알)하였다.
○ 2년 7월에 이찬 于老(우로)로 大將軍(대장군)을 삼아 甘文國[감문국:지금의 金泉(김천)]을 쳐 깨뜨리어, 그 땅을 郡(군)으로 삼았다.
○ 3년 4월에 왜인이 갑자기 닥치어 金城(금성)을 에워싸므로, 왕이 친히 나아가 싸우니 적이 潰走(궤주)하는지라, 輕騎(경기)를 보내어 이를 추격하게 하여 1,000여 명을 殺獲(살획)하였다.
○ 4년 4월에 큰 바람이 불어 屋瓦(옥와)를 날렸다. ○ 5월에 왜병이 東邊(동변)을 침범하였다. ○ 7월에 이찬 于老(우로)가 沙道(사도)122)에서 왜인과 싸울 때 바람을 따라 불을 놓아 배를 태웠으므로 적병들이 물에 뛰어들어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 6년 정월에 왕이 동쪽으로 巡幸(순행)하여 人民(인민)을 撫恤(무휼)하였다.
○ 7년 2월에 骨伐國[골벌국:지금의 永川(영천)]왕 阿音夫(아음부)가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므로, [王(왕)이] 邸宅(저택)과 田莊(전장)을 주어 安居(안거)케 하고, 그 곳[骨伐(골벌)]을 郡(군)으로 삼았다.
○ 8년 8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 11년에 백제가 西邊(서변)을 침노하였다.
○ 13년 가을에 크게 풍년이 들고, 古陁郡[고타군:安東(안동)]에서는 嘉禾(가화)를 (왕에게) 바쳤다.
○ 15년 정월에 이찬 于老(우로)를 배하여 舒弗邯(서불감)123)을 삼고 겸하여 兵馬事[병마사:軍事(군사)]를 맡게 하였다.
○ 16년 10월에 高句麗(고구려)가 北邊(북변)을 침범하니, 우로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치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와 馬頭柵(마두책)에 依據(의거)하였다. 그 날 밤이 몹시 추워서 우로는 士卒(사졸)을 위로하며 몸소 나무에 불을 살라 (그들을) 따뜻하게 하니 군중이 감격하였다.
○ 17년 10월에 東南方(동남방)에 匹鍊(필련)124)과 같은 횐 기운이 있었고, 11월에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 18년 5월에 왕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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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沙道(사도) : 경북 盈德(영덕)의 舊(구) 沙冬院(사동원) 부근인 듯.
123) 舒弗邯(서불감) : 舒弗邯(서불감)은 혹은 舒發翰(서발한)이라고도 쓰는데, 다 伊伐飡(이벌찬)의 별칭이며, '舒弗(서불)'ㆍ'舒發(서발)'은 徐伐(서벌)과 같은 말, '邯(감)'ㆍ'翰(한)'은 干(간)과 같은 말인즉, 이 벼슬은 京都(경도)를 지키던 重職(중직)인 듯하다.
124) 匹鍊(필련) : 한 필의 마전한 비단이란 뜻에서 瀑市(폭시)를 의미하는 말도 됨.
助賁尼師今
○ 助賁尼師今立【一云諸貴】, 姓昔氏, 伐休尼師今之孫也, 父骨正【一作忽爭】葛文王, 母金氏玉帽夫人, 仇道葛文王之女, 妃阿爾兮夫人, 奈解王之女也, 前王將死, 遺言以壻助賁繼位, 王身長, 美儀采, 臨事明斷, 國人畏敬之
○ 元年, 拜連忠爲伊湌, 委軍國事, 秋七月, 謁始祖廟
○ 二年, 秋七月, 以伊湌于老爲大將軍, 討破甘文國, 以其地爲郡
○ 三年, 夏四月, 倭人猝至圍金城, 王親出戰, 賊潰走, 遣輕騎追擊之, 殺獲一千餘級
○ 四年, 夏四月, 大風飛屋瓦, 五月, 倭兵寇東邊, 秋七月, 伊湌于老與倭人戰沙道, 乘風縱火焚舟, 賊赴水死盡
○ 六年, 春正月, 東巡撫恤
○ 七年, 春二月, 骨伐國王阿音夫率衆來降, 賜第宅田莊安之, 以其地爲郡
○ 八年, 秋八月, 蝗害穀
○ 十一年, 百濟侵西邊
○ 十三年, 秋, 大有年, 古陁郡進嘉禾
○ 十五年, 春正月, 拜伊湌于老爲舒弗邯兼知兵馬事
○ 十六年, 冬十月, 高句麗侵北邊, 于老將兵出擊之, 不克, 退保馬頭柵, 其夜苦寒, 于老勞士卒, 躬燒柴煖之, 群心感激
○ 十七年, 冬十月, 東南有白氣如匹練, 十一月, 京都地震
○ 十八年, 夏五月, 王薨
조분이사금
○ 조분이사금은 [제귀]라고 정하였다. 석씨 성에서 벌휴이사금 손주다. 아빠가 갈문왕이니 [골정이라쓰고 홀쟁으로 유명세 탐] 엄마 김씨는 옥모부인이다. 구도에서는 갈문왕의 여자지만, 왕비에서는 아이혜 부인이다. 왕의 여자 해석을 어찌하냐. 앞 날에 임금이 죽으면 유언장을 남기니 왕의 지위를 조력자를 띄우니 키가 커. 채굴하는 풍속을 숭상하니. 사명이 끊겨서 나라안 사람들에 억울함과 공경함 사이에 머물렀다.
○ 원년, 가짜 충신들이 아찬을 챙기려고 하니까 비변사 기능을 맡겼다. 가을 7월에 처음으로 조묘를 알묘하였다.
○ 2년. 가을 7월에 이찬이 노인으로 하여금 대장군으로 임명을 하니까 감문국을 토벌 파병하여서 고을로 삼았다.
○ 3년. 여름 4월에 일본인이 금성을 에둘러 쌓길래 임금이 출사표를 던졌고, 도둑이 궤멸하여 도망가니까 경기병을 파견하여 추격하니까 1천여급을 살려서 득템하였다.
○ 4년 여름 4월은 큰 바람이 집과 기와를 날렸다. 5월은 일본인이 동변에서 난리났다. 가을 7월은 이찬이 노인에게 일본인과 전사를 함께 하게 하였고, 승풍이 불어와 배를 불질렀으니 수사진한 상태로 도둑을 향해 전진하였다.
○ 6년 봄 정월에 동쪽 무휼지역을 순시하였다.
○ 7년 봄 2월에는 골벌국 임금 아음부는 식솔을 챙겨서 항복하였는데, 차례대로 전택을 내려줬는데 장안해 하면서 이 땅도 고을로 삼았다.
○ 8년 가을 8월에 해충이 창궐하여 곡식이 없었다.
○ 11년 백제가 서변에 침투하였다.
○ 13년 가을. 이번 년도는 고타 고을에 벼가 아름다워서 진상왔다.
○ 15년 봄 정월에 이찬이 노인에게 감사를 표하며 서불 땅에 병마사를 뻗쳐서 알게 하였다.
○ 16년,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북변을 침투하였다. 노인 장병이 출전하였고, 이기지 못했다. 마두책으로 물러나서 지키는데 고한의 밤은 노인은 일하고 선비가 군사화하였으니 섶을 불태웠으니 몸이 따뜻하여서 군심이 감격도 했다.
○ 17년 겨울 10월은 백기가 필연적으로 들러붙었다. 11월에 지진 난거지.
○ 18년 여름 5월에 무너지는 고을대표가 많았다.